"5년 걸릴 줄 알았는데"…9개월 만에 공장 허가한 여주시

입력 2015-11-17 18:12  

여주시 인·허가 부처, 매달 두 번씩 회의…'속전속결' 공장 허가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
옴니시스템 화장품 공장 이전
불합리한 법령에 막히자 여주시가 앞장서 해결

기업도 놀란 파격 행정
"대안 찾아주는 공무원들에 깜짝놀라 말문이 막힐 뻔"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 "일자리 창출로 보답"



[ 강경민 기자 ] 디지털 계측기 제조업체인 옴니시스템의 박혜린 회장은 지난 13일 경기 여주시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 옴니시스템 계열사의 신규 공장이 들어서는 부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안건이 이날 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했다는 내용이었다. 인허가 절차의 최종 단계인 도시계획위 승인을 받으면 곧바로 공장을 착공할 수 있다. 공장 설립을 위해 여주시 공무원들과 첫 회의를 한 지 9개월 만이었다.

박 회장은 17일 “공장 설립 절차를 거치는 데 최소한 5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며 “수도권에서 9개월 만에 허가가 난 건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감격해했다.


기업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규제 개혁에 나선 여주시의 파격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감사나 민원을 의식해 법적인 하자가 없음에도 인허가를 내주는 데 소극적인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와 대비된다. 여주시는 옴니시스템 계열사 유치 과정에서 공장 설립이 법령에 가로막히자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옴니시스템을 비롯해 10여개 회사를 경영하는 박 회장은 지난해 말 여주시 가남읍의 옴니시스템 공장 부지(3만6300㎡)에 320억원을 들여 계열사 화장품 공장을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 이전할 회사는 대전과 경기 파주에 생산공장이 있는 한생화장품. 한생화장품이 들어설 부지는 영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만나는 교통 요충지에 있어 공장을 이전하면 물류 배송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부지 내에 공장이 들어설 여유 공간도 많다.

옴니시스템이 공장 설립을 위해 여주시 공무원과 처음 만난 건 9개월 전인 지난 2월 초. 시 공무원들과 면담하기 전에 박 회장이 만난 건축사들은 모두 공장 설립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된 여주시에서 공장 설립이 쉽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더욱이 옴니시스템 부지가 있는 가남읍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화장품 공장 등 화학물질 배출시설 설치가 금지된 계획관리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기대를 접은 채 참석한 여주시 공무원들과의 첫 회의에서 박혜린 회장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해당 부지를 산업형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하면 계획관리구역 여부와 상관없이 화장품 공장 설립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옴니시스템만을 위한 산업단지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 시의 설명이었다. 옴니시스템이 여주로 계열사 공장을 이전하려고 한다는 얘기를 미리 듣고 관련 부서가 세 차례의 회의를 거친 끝에 나온 대안이었다. 관련법상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 승인 권한은 해당 기초단체장이 갖고 있다. 박 회장은 “법적인 하자가 없어도 인허가를 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아주는 공무원을 보고 처음엔 당황해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여주시 공무원들의 파격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된 여주시는 6만㎡ 이상의 공업용지 개발이 불가능하다. 3만~6만㎡의 공업용지는 국무총리실 산하 수도권정비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옴니시스템 부지 면적은 3만6300㎡로, 위원회 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여주시는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는 면적을 3만㎡ 미만으로 신청하라고 박 회장에게 조언했다. 수도권정비위원회를 거치면 승인을 받는 데 오랜 기간이 걸려 공장 설립이 지연될 것을 우려한 여주시의 배려였다.

첫 회의 후 여주시의 행보는 더욱 빨라졌다. 한 달에 두 차례 부시장 주재로 옴니시스템 공장 설립을 위한 규제개혁 협업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도시과 건설과 환경관리과 허가지원과 등 관련 부서 과장·팀장급 직원 20여명이 모두 참석했다. 이들 부서는 공장 설립을 위한 각종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다. 옴니시스템이 일일이 부서를 찾아募玖庸?인허가 절차를 밟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원스톱 처리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공장 설립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시 도계위도 기업 유치에 힘을 보탰다. 국토교통부의 개발행위허가 운영지침에 따르면 산업단지에 공장을 신축하려면 3만㎡ 이상의 부지면적은 폭 8m의 진입로를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옴니시스템 부지로 진입하는 도로의 폭은 4m에 불과했다. 더욱이 진입로 일부 구간은 중부내륙고속도로 밑을 통과하기 때문에 확장이 불가능했다. 도로 확장 공사를 하려면 고속도로 차량 통행을 금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주시는 심사숙고한 끝에 옴니시스템과 계열사인 한생화장품만 해당 도로를 이용해 4m만으로도 차량이 통과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도계위에 참석한 위원들도 시의 판단을 존중해 예외사항으로 통과시켰다. 고속도로 밑을 지나 도로 확장이 불가능한 곳은 현 상태로 유지하되, 나머지 구간만 폭 8m를 확보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 13일 도계위에서 설립 승인을 받은 옴니시스템 부지 내 한생화장품 공장은 다음달 착공할 예정이다. 공장 설립 신청부터 승인까지 9개월이 걸렸다. 지구단위계획구역 지정과 수도권정비위 등을 거쳐 공장 설립이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선 평균 5년가량 걸린다는 것이 업계와 지방자치단체의 설명이다. 원칙적으로는 100일 내에도 승인이 가능하지만 이해 관계자들의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하고, 공무원들이 민원과 감사 등을 의식해 행정절차를 미루면서 5년가량 걸린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각종 규제에 묶여 있는 수도권 지역에선 정부와 지자체를 설득하는 등 인허가 절차에만 최소 5년이 걸리거나, 아예 昇「?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유치를 위한 여주시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자세에 감동받았다”며 “그에 대한 보답으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림 시 규제개혁팀장은 “지자체가 당연히 해야 할 기업 유치를 위해 정상적인 인허가 절차를 밟았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하는 등 규제개혁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여주=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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