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에선 때아니게 개혁 아이디어 짜내기가 한창이다. 은행들은 문을 너무 일찍 닫는다는 지적에 주말에도 영업하는 탄력점포 확대에 나섰고, 보험회사는 실손의료보험 등의 보험금 청구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부산하다. 특히 카드회사들이 당정의 일방적인 카드 수수료율 인하 결정으로 불벼락을 맞는 모습을 지켜봤던 터라 더욱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 쪽도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는 새누리당이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 한도와 수혜 대상을 확대하려고 하자 난감한 모습이다. 세수 감소가 당초 예상했던 5500억원보다 훨씬 많은 조 단위로 불어날 게 뻔해서다. 재형저축과 소득공제장기펀드가 올해로 끝나지만, 이에 따른 세수 확대액은 연간 1500억원 수준이다. 그래도 기어이 비과세한도를 늘리는 방향으로 대안을 내놓을 것이다.
금융복지로의 끝없는 충동
모두 새누리당이 금융개혁추진위원회를 만든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이달까지 10개 과제를 정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을 확정하겠다고 한다. 물론 내년 총선용 금융개혁일 뿐이다. 소위 금융복지를 향한 충동이 꿈틀거린다.
이미 조짐이 심상치 않다. 카드 수수료율 깜짝 인하가 그렇다. 벌써 가입자의 연회비 인상, 부가서비스 축소 같은 폐해가 거론되고 있다. 더욱이 카드사 입장에선 카드를 써서 물건을 더 많이 사는 소비자와 점포를 역차별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은행을 인가할 때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에게 연 10%대 중금리 대출을 하면 가산점을 부여하자는 소리까지 들린다.
정부도 토를 달 입장이 못된다. 국민이 금융개혁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게 사실이다. 금융회사 실무자들이 아니고선 뭐가 달라졌는지 알지 못한다. 새누리당이 직접 나선 이유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수수료율, 금리 같은 가격에는 개입하지 않는 금융개혁을 선언했지만 끝내 자기 발등을 찍고 말았다.
정치가 개입하면 개혁 망친다
해야 할 일은 안 하면서 엉뚱하게 치닫는 금융개혁이다. 현안인 구조조정 문제도 결국 한국 금융의 낙후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보고서에서 국책은행이 구조조정을 더 늦췄고 금융자원 배분을 왜곡시켰다고 지적하는 그대로다. 구조조정의 실패는 곧 국책은행과 정책금융의 실패다. 산업은행이 자회사를 370여개나 거느린 거대한 그룹 행세를 하고, 수출입은행은 부실대출 급증으로 작년 말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10.1%로 기준치(10%)를 간신히 넘는다. 이들이 없었다면 기업 퇴출과 관련해 M&A, 정크본드 등 민간 금융시장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경제는 더 활기차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런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
10년도 모자란 게 금융개혁이다. 새누리당의 개입은 ㎸蛙돋맨求? 금융의 경쟁력 강화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10개 리스트를 채우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금융회사의 팔을 비트는 쪽으로 갈 게 분명하다. 금융복지를 금융개혁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바로 금융에 있다. 공무원연금개혁은 허당이었고, 노동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고, 교육개혁은 교과서 국정화가 없었다면 맹탕이었다. 금융개혁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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