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중공업, 키코사태 딛고 글로벌 강소기업 도약

입력 2015-11-18 18:21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 "문 닫을 위기에도 R&D 더 매달리고 사람 아껴"

간경화 이겨내고 해외사업에 몰두…중국서 유럽사와 진검승부
키코로 200억 손실났지만 차별화된 기술로 극복…직원 20%가 R&D인력
위기때 사람 소홀히 하면 소중한 인재 모두 잃어



[ 김희경 기자 ] “얼마 전 간을 점점 굳게 만들던 바이러스를 몸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몸도 마음도 정말 가볍네요.”

정석현 수산중공업 회장(사진)은 18일 인터뷰를 시작하며 밝게 웃었다.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로 인한 손실을 완전히 극복하기도 전에 찾아온 간경화를 이겨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29년 전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이 때문에 6년 전부터 간경화가 진행됐다.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건강을 전혀 돌보지 못해 몸이 망가졌다”며 “지금은 많이 좋아져 해외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산중공업은 2004년 정 회장이 인수한 뒤 90여개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약 11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위기는 날 쓰러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보약이 됐다”며 “어려울수록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括潁?확보한 것이 한 단계 도약한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위기 극복은 기술 개발로부터

정 회장은 집안이 어려워 편하게 공부할 형편이 안 됐다. 전주공고를 나와 곧장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공부를 하고 싶어 월급을 모아 야간 대학에 다녔다. 대학을 마치고 공구 장사를 시작했다. 1983년 석원산업을 설립해 발전소 건설 하도급을 맡았다. 그리고 2004년 유압브레이커(암반이나 콘크리트를 깨는 기기) 등 건설 중장비를 생산하는 수산중공업을 인수했다.

회사가 성장을 거듭하던 2008년 ‘키코 사태’란 큰 위기에 부딪혔다. 키코(knock-in, knock-out)는 환헤지 파생금융상품이다. 당시 많은 중소기업이 키코 계약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는 회사가 이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정 회장은 “은행이 대표인 나도 모르게 여직원 사인만 받아갔다”며 “2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났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군 회사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였다.

그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기술 개발만이 살길’이라는 것이었다. 주변에선 말렸다.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투자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수산중공업은 당시 일본 업체의 기술을 벤치마킹해 제품을 만들어 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정 회장은 “일본 제품을 흉내내는 것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뛰어넘는 기술을 개발하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국가와 제품 용도별로 구분하고 가장 필요한 제품 80여종을 개발했다. 이때 개발한 제품이 수산중공업을 유압브레이커 세?5위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수출액은 인수 당시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정 회장은 “국내에서 잘 팔린다고 외국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며 “국가별로 장비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특징, 광산별 지질 등을 연구하면서 일본을 따라잡는 기술력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가 어려운 올해도 연구개발 인력을 35명에서 50명으로 늘렸다. 연구원은 전체 직원의 20%에 달한다.

“직원 가족은 내 가족”

정 회장은 ‘사람’을 통해 성장하고 위기도 극복했다고 했다. 그는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며 “위기일수록 사람을 더 아껴야만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키코 사태 때 수산중공업은 석 달간 조업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은 최소화했다. 월급 일부를 삭감하는 방법으로 고통을 함께 나눴다.

위기에도 복지 혜택은 전혀 줄이지 않았다. 당시 정 회장은 “자녀 학자금과 부부 상해보험 가입 지원 등 모든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는 “흉년 들었다고 자식 안 가르치는 부모 없다”며 “직원들 가족은 내 가족인데 어렵다고 가족을 안 돌보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동요하던 직원들은 마음을 추슬렀다. 불안한 마음에 회사를 떠나는 이들은 없었다. 그는 “어렵게 이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를 확보했는데 위기 때 사람을 소홀히 대하면 이들을 모두 잃는다”며 “회사가 직원에게 변치 않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산중공업은 최근 중국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 회장은 “급격히 팽창하는 중국 시장에서 글로벌 업체 간 대전(大戰)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뛰어난 품질과 차별화된 애프터서비스(AS)로 승부하겠다”고 말했다. 유럽 업체들은 중국에 제품만 팔고 AS를 소홀히 해 승산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정 회장은 “사람도 기업도 위기를 넘기면 더 강해진다”며 “탄탄해진 체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의 강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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