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멈춰선 사직2구역에 무슨 일이…
2012년 사업시행인가 받았지만 서울시 '성곽 복원' 이유로 중단
조합 "월 1억 이자…피해 막심"
주민 190가구 중 104가구 떠나…권익위·감사원도 조합 손들어줘
[ 이해성 기자 ]
반쯤 부서진 가옥들이 연이어 눈에 들어왔다. 지붕은 내려앉고 축대는 무너져 곳곳에 ‘재난 위험’ 노란색 표지판이 붙어 있다. 가스관은 대부분 절단돼 있고 갈라진 벽면엔 비둘기 배설물 등 오물이 그득하다. 골목길은 경사가 험난하고 좁아 사람이 다니기 힘들 정도다. 서울 종로구 사직2 도시환경정비구역의 모습이다. 재개발을 진행해 왔으나 서울시의 역사·문화시설 보존 방침에 따라 2년 전부터 사업이 멈췄다. 사직2 재개발조합은 종로구를 상대로 부작위(不作爲·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서울시 ‘성곽 보존’에 재개발 올스톱
사직2구역(사직동 311의 10 일대 3만4268㎡)은 종로구 사직터널 남측과 경희궁 북측에 펼쳐져 있다. 70년 이상 된 적산 가옥(해방 전 일본인 소유였던 집)과 해방 직후 지어진 낡은 집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2009년 구역 지정 뒤 바로 재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지상 12층 13개 동, 아파트 456가구로 계획했다. 2012년 9월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시공사(롯데건설) 선정까지 마쳤다. 이듬해 10월 30가구를 추가하기로 하고 사업시행변경인가신청을 했다.
그러나 그때 서울시가 한양도성 복원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재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한양도성 복원은 이전 성곽을 보존해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사업이다.
서울시는 건축물 층고를 낮추고 현재 조합사무실로 쓰고 있는 감리교 선교사 숙소 건물을 보존할 것을 권고했다. 조합은 이를 반영해 변경인가를 냈으나 처리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주무관청인 종로구에 사실상의 인가 보류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조합은 사업 지연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한양도성 복원은 이 구역 재개발과 연관이 적고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이상 인가를 보류한 것은 부당하다”며 올 3월 시정권고를 했다. 감사원도 올 6월 조합의 감사청구사항을 받아들여 “종로구는 사직2구역 사업인가를 조속히 이행하라”며 주의요구를 했다.
○“행정 폭력” vs “정책상 불가피해”
성곽 보존이 사직2구역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종로구 양의문교회(송월1길 73의 18)를 기점으로 성곽 유구(遺構·옛 토목 건축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끊겨져 있다. 이후부터 이어지는 송월길은 모두 멸실구간이라 흔적이 없다. 월암공원 방향으로 멸실구간이 300m가량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GS건설의 ‘경희궁자이’ 모델하우스 위편으로 새로 지은 흰색 보존 성곽 모습이 드러났다. 멸실구간 주변으로 펼쳐진 이른바 ‘성곽마을’은 대부분 빌라로 채워진 상태다. 성곽길은 사직2구역과는 맞닿아 있지 않았다.
사직2조합은 그동안 사업을 추진하며 350억여원을 썼고 매달 1억원가량의 이자를 물고 있다고 밝혔다. 조합원 190가구 가운데 104가구는 무너져 가는 집을 버리고 떠났다. 김학영 사직2조합장은 “정상적으로 추진되는 재개발사업을 이렇게 중단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행정 폭력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권익위와 감사원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와 종로구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종로구는 “서울시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올해 마련한 ‘역사문화도심계획’상 사직2구역 재개발 사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승원 서울시 도시활성화과장은 “(감사원 등의) 요청과 서울시 행정은 별개”라며 “선교사 부지 재매입 등 여러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말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 필요할 때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할 수 있다’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조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사직2조합 관계자는 “이 조례는 사직2구역을 겨냥한 것”이라며 “위헌소송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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