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책과 영화 중 어떤 걸 먼저 봐야 더 재미있을까.
필자는 단연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의견에 대부분 동감하리라는 것을 전제로 그 이유를 궁리해 봤다. “분량 제한이 없는 책을 오랜 시간 읽은 뒤 원작을 각색한 영화를 보면, 양이 너무 확 줄어든 데다 결말마저 달라질 수 있는 영화가 책보다 더 재미없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왜 영화를 본 뒤 책을 읽는 게 더 재미있는지를 완벽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본다. 책을 먼저 읽으면 마음속으로 그 책의 주인공들을 상상하고, 그 상상은 머릿속에 형상화된다. 그래서 막상 영화를 보면 상상과 눈앞의 현실 간 차이가 극도로 커서 혼란이 온다. 반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으면 이미 각인된 영화 속 영상이 책의 글자를 통해 더 높은 연상 작용을 일으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것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는 이유라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만화를 각색한 영화는 만화보다 더 재미있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獵? 물론 종이 위의 정지된 그림인 만화보다는 영상으로 움직이는 영화가 더 재미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필자는 앞서 말한 주장처럼 영화를 먼저 보고 만화를 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와 책을 보고 읽는 순서는 특허청의 디자인 심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디자인 심사는 도면과 글자로 구성된 디자인 출원을 기존에 있는 것과 비교하는 작업이다. 필자는 디자인 심사관들에게 “아무리 바빠도 자기가 맡은 분야의 물품들을 현장에 나가 직접 봐야 한다”고 권장하고 있다. 도매시장 또는 기업 디자인실에 가서 해당 제품을 실제 본 이후에 심사하면, 마치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듯 심사에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더 좋은 심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와 책을 보고 읽는 순서에 따라 재미가 다르듯이, 모든 것에는 순서에 따른 효과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필자는 앞으로 심사관들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듯 제대로 된 심사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것이다. 그래야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디자인 심사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
최동규 < 특허청장 dgchoi15@korea.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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