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거목' 김영삼, 금융실명제로 경제개혁…OECD 가입 숙원도 이뤄

입력 2015-11-22 10:01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야권 지도자다. 최연소·최다선 의원으로 군부 정권에 저항, 험난한 정치 역정을 거쳐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재임시절 공과(功過)는 경제정책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 실명제와 부동산 실명거래 등 경제개혁 정책을 폈다. 대외적으로는 적극적 시장개방을 시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임기 말 한보철강과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의 연이은 도산 등 '경제 적신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게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바탕으로 한국 경제의 투명성을 높였다. 금융·부동산의 양대 실명제를 이룩하며 부패 차단에 적극 나섰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 초기 8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업고 금융·부동산 실명제를 도입, 부패 차단과 과세 형평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금융실명제는 김 전 대통령의 취임 첫해인 1993년 8월 12일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 발동을 통해 시행했다.

가명과 차명을 쓴 금융거래가 각종 비리·부패 사건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담화문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않고는 ?땅의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고,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을 근원적으로 단절할 수 없다"고 실시 배경을 설명했다.

김영삼 정부의 경제개혁 정책은 부동산 거래 실명제로 이어졌다.

금융실명제법 도입으로 부동산에 자금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투기를 막으려고 1995년 1월 6일 부동산 실명제 실시 계획이 발표됐다.

입법 절차는 3주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는 한국의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정부의 규제가 민간부문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으로 규제개혁에도 나섰다.

기업창업·공장입지, 자금조달, 시장진입 관련 행정 절차가 크게 간소화됐다.

대외적으로는 임기 전반기 빠른 경제 성장과 적극적 시장개방을 바탕으로 1996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점도 업적으로 꼽힌다.

정부 차원에서 OECD 가입을 역점 사업으로 정하고 가입 협상을 벌여 성사시킨 일이었다.

당시 야당에선 OECD 가입에 따른 외화출자와 개도국 지원 등 의무 사항이 많은 점을 들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OECD 가입을 통한 급속한 세계화와 시장개방은 불과 1년 만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김영삼 정부는 OECD 가입을 계기로 경제개혁·개방 정책에 피치를 올렸지만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 계열사인 한보철강 부도를 계기로 대기업 연쇄 부도 사태를 맞았다.

같은 해 4월 삼미그룹이 부도를 낸 데 이어 7월 기아자동차 도산 사태가 터졌다.
쌍방울그룹, 해태그룹이 위기를 맞았고 고려증권, 한라그룹이 차례로 넘어갔다.

1997년 한 해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을 넘었다. 이에 따른 신용 경색과 금융시장 혼란은 한국을 금융위기로 몰아갔다.

해외 금융기관의 부채 상환 요구에 외환보유액이 바닥이 나자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을 가까스로 면했다.

OECD 가입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지 못하면서 급속하게 시장개방과 자본 유출입을 허용해 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참으로 송구스러울 뿐"이라며 난국 타개에 힘을 합쳐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재임 5년간 경제부총리를 6번이나 바꿔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이 수립·집행되지 못했다. 무리하게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다가 외환위기를 맞은 점은 김 전 대통령의 과(過)로 지적된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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