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고용을 보호하면 고용이 죽는다

입력 2015-11-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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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호 논설위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지난해 미국 휴렛패커드(HP)가 2만1000명을 감원했고 에너지 기업인 슐럼버거가 2만명, 마이크로소프트(MS)도 1만8000명을 해고했다는 소식이다. 정작 미국인들은 이 같은 뉴스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단지 석유나 소프트웨어업종이 지금 불황이라는 정도로 이해한다. IBM이나 제너럴모터스(GM)에서 채용을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다.

해고가 많을수록 고용도 장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건 시장경제에서 자연스런 관측이다. 경제의 활력(바이털리티)이 높을수록 이런 변동성은 더욱 커진다. 미국에서 실업자들을 위한 재충전의 교육시장은 활발한 상황이다. 대학에서는 나이 든 학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혁신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미국, 구조조정과 채용은 동시에

이게 선순환의 경제 생태계요, 높은 노동유연성이다. 노동유연성은 해고를 뜻하는 게 아니라 해고와 고용의 기회를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의 월간 실업률이 5%까지 떨어지고,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40년 만에 최저 수준에 달하는 건 이런 생태계가 만든 성과다. 물론 이런 생태계는 경제적 자유가 낳?산물이다.

미국에서 국가가 고용을 보호하는 제도적 수준은 매우 낮다. 노동시장에선 구조조정과 신규 채용이 동시에 이뤄지는 게 다반사다. 이런 활력 덕분에 고용은 오히려 증가한다는 게 여러 연구에서 지적하는 바다. 강한 자유시장과 노동개혁을 상징으로 하는 레이거노믹스가 나온 지 30여년 만에 형성된 결과다. 정작 고용을 보호하는 정도가 높은 스페인이나 그리스에선 실업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역설적이다. 독일의 하르츠개혁도 고용이나 실업 제도가 오히려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해고가 자유스러워야 고용도 자유스럽다는 인식을 갖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

한국은 노동시장 유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25위다. 노동시장 규제가 심한 국가 중 하나다. 고용 보호 수준도 중상위권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우리 경제의 활력을 평균 50대로 보고 있다는 설문조사(전국경제인연합회)는 당연한 귀결이다. 이처럼 정체되고 답답한 생태계는 물론 노조와 제도가 만들었다. 시장의 힘을 간과하고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지 않은 데서 나온 것이다.

노동 수급은 시장서 결졍돼야

비단 노동문제만이 아니다. 금융개혁도 그렇고 공기업개혁도 그렇다. 시장을 신뢰하지 않고 지레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여론에서 개혁이 맴돈다. 최근 학교 인근에 호텔을 건립할 수 있게 한 관광진흥법안 개정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한 야당 의원이 서울의 호텔에 객실 이용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법안 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고 한다. 객실 수급문제는 시장에 맡길 일이지 야당이 우려할 사항이 아니다. 투자湄湧?공급과잉 상태라면 투자하지 않을 것이고 객실 부족 상황이라면 투자하게 돼 있는 건 상식이다. 정부와 국회가 그것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정부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자유기업 제도가 부를 확대시키고 고용과 기회를 창출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한국은 정부가 아닌 정치권이 시장 생태계를 방해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곧 본질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바보들이 한국에는 너무나 많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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