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IS 격퇴 외치며 시리아 정부 비호에 주력
오바마 "러, IS 파괴에만 초점 맞춰야" 비난
시리아 해법 놓고 친미-친러 세력 갈등 비화
[ 이상은 기자 ]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가 지난 24일 시리아 접경지역을 비행하던 러시아 전투기 SU(수호이)-24 한 대를 격추한 뒤 중동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주도한 연쇄테러가 벌어진 뒤 프랑스는 물론 미국 러시아 터키 등을 아우르는 ‘반(反) IS 연합군’이 형성될 참이었는데 연합군이 형성되기도 전에 같은 편끼리 주먹다짐을 벌인 꼴이다. IS를 응징하러 가는 ‘정의의 사도’를 상상했던 이들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하지만 중동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터키, 러시아 등의 이해관계가 너무 달라서다. 특히 러시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무리에서 홀로 튀는 존재(아웃라이어)”다. IS가 지난달 31일 이집트를 출발한 러시아 비행기를 추락시킨 것을 계 綏?서방 연합군에 합류하긴 했지만 러시아는 IS 공격보다 시아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을 비호하는 데 더 관심을 쏟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터키는 왜 러시아 비행기를 공격했나
이번 사건은 이 같은 러시아의 이중적 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IS 핵심 거점인 락까 등을 공습하기보다 IS를 명분 삼아 시리아에 들어간 뒤 북부 반군을 공격하는 데 더 주력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아사드 정권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원유 등을 유럽에 수출하는데, 이 시장을 유지하고 중동국가가 직접 유럽까지 가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아사드 정권과 협력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시리아 반군 중에는 수니파 튀르크멘족 반군이 있다. 이들은 터키 주요 민족인 튀르크족의 ‘형제 민족’으로 여겨진다. 터키는 이들이 사는 시리아 북부지역을 분쟁의 완충재 역할을 하는 ‘안전지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접경지대에서 공습을 계속해왔다. 이번에 전투기가 격추된 터키 남부 하타이주 국경선은 U자형으로 생겼다. 이 때문에 러시아 비행기가 터키 영공을 지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터키 총리는 지난 22일 “국경 안보를 위협하는 어떤 행동에도 보복하라”고 군에 지시했다. 이런 가운데 24일 러시아가 다시 시리아 반군을 목표로 삼자 터키가 영공 침범을 이유로 격추한 것이다. 러시아는 당시 전투기가 시리아 영공을 날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터키 군은 레이더에 감지된 러시아 전투기의 이동경로를 공개하며 터키 영공을 침범한 것이 분명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러시아 전투기에 탔던 2명의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러시아 정부는 1명은 사망하고 1명은 시리아 군이 구조해 보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전은 않겠지만 反IS 연합군엔 ‘균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은 격노했다. 곧바로 긴급 TV 연설에서 “테러리스트의 공범(터키)이 등 뒤에서 칼을 꽂았다”며 “오늘의 비극은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터키 간 다툼이 전쟁 차원으로 비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고, 그보다 러시아가 터키에 대한 경제제재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국제정치 전문가들의 견해다. 데이비드 갤브레스 영국 바스대 교수는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러시아가 앞으로 좀 더 신중하게 비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전쟁할 뜻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터키는 영공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옹호하며 “러시아가 시리아의 온건 반군을 공습하는 것은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러시아가 “공습 초점을 IS 파괴에 맞춤으로써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번 격추사건으로 드러난 반IS 연합군 내 ‘균열’이 쉽사리 봉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들이 러시아를 비난하고 있지만 이란은 러시아를 옹호하고 나섰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시리아의 상황을 복잡하게 하고 긴장을 높이는 어떤 행동도 테러리스트들에게 잘못된 신호로 작용해 시리아(정부)를 겨냥한 테러를 계속해도 된다고 믿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가장 강력한 우군으로 러시아와 긴밀히 협조해왔다. 이란은 시아파의 ‘맏형’ 노릇을 하고 있는데 시리아는 시아파가 정권을 잡고 있다. 시리아 정권 축출 지지 여부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를 중심으로 반(反)IS 세력이 나뉘고 있는 셈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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