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중소기업·벤처 창업자의 든든한 버팀목…국내 IPO 부동의 1위

입력 2015-11-26 18:25  

IB KOREA 인물탐구 (8)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IB본부장

후발주자 약점을 강점으로…동원증권 시절부터 벤처 IPO 집중
국내선 외면한 중기 해외투자 유치…IB업계 최초·최대 딜 '제조기'

만남 즐기는 IB맨…상장 앞둔 중기 CEO 모임 만들어
힘들 땐 도움주며 '돈독한 관계'…끈끈한 네트워크로 업계 강자로



[ 유창재 / 서기열 기자 ] ▶마켓인사이트 11월26일 오전 9시13분

투자은행(IB) 업무는 흔히 구두닦이에 비유된다. 그래서 투자은행가들도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소위 ‘찍새’와 ‘딱새’다. 찍새는 IB 서비스가 필요한 기업을 발굴해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일을 맡는다. 딱새는 찍새가 유치해온 고객을 위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딜(주식·채권 발행, M&A 등)’을 실행하는 역할을 한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IB본부장(부사장·사진)은 찍새다. 1988년 처음 한신증권(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한 동원증권의 전신)에 입사했을 때부터 그랬다. 벤처기업 영汰?담당하는 ‘기업부’에서 업무를 시작한 그는 처음부터 찍새 일이 좋았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데다 영업도 재무구조를 이해하고 컨설팅을 제공해야 하는 고난도 전문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이 국내 기업공개(IPO) 대표 주관 1위를 놓치지 않는 IPO 명가(名家)로 성장한 것은 ‘천생 찍새’인 정 본부장을 중용했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IPO로 승부를 걸자”

정 본부장은 초년생 시절부터 ‘동원증권은 태생적으로 IPO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행 계열도, 대기업 계열 증권사도 아니어서다. 그는 기업들이 인수합병(M&A) 같은 큰 딜을 아무 신뢰 관계도 없는 후발주자에게 맡길 리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모기업도 없고 은행에 의지하기도 어려운 벤처기업들은 달랐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IPO였다. 정 본부장은 상장 단계에서 도움을 주면 이 기업들이 성장해 추후 M&A 같은 큰 딜을 맡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 과정에서 동원증권의 IPO 역량을 쌓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자신의 이런 생각을 꾸준히 실행에 옮겼다. 회사도 그의 판단을 믿고 지원했다. 그 결과 동원증권은 1990년대 IPO 시장을 양분했던 대우증권과 대신증권을 제치고 코스닥에서 시작해 대기업 IPO 시장까지 차례로 장악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국내 최초, 최대 기록을 세웠다. 2004년 국내 최초로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를 뉴욕 증권거래소와 한국거래소에 동시 상장시켰다. 2007년에는 역시 국내에서 처음으로 삼성카드 IPO에 수요예측 방식을 도입했다. 2010년에는 국내 사상 최대 딜이었던 삼성생명 IPO(4조8881억원)의 대표 주관을 맡았다.

국내 벤처와 해외 투자자 연결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정 본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딜’을 묻는 질문에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외면했던 중소기업을 해외 투자자에게 소개해 주목받은 딜들”이라고 털어놨다. 예를 들어 2010년 상장한 락앤락은 국내 기관들로부터 ‘반찬통 업체’로 치부됐다.

하지만 정 본부장은 홍콩과 싱가포르 투자자들에게 락앤락을 ‘한국판 프록터앤드갬블(P&G)’로 인식시켰다. 2007년 상장한 오스템임플란트도 국내에서는 ‘나사 깎는 회사’ 정도로 여겨졌지만 해외에서는 유망한 헬스케어 업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05년 SNU프리시전 상장을 앞두고 해외 로드쇼를 갔던 일입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1월이었는데 창립자인 박희재 서울대 공대 교수와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뉴욕, 뉴저지의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니던 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공모 규모 189억원에 불과한 작은 딜이었지만 투자 기회를 국내에만 국한하고 싶지 않았죠. LCD 패널을 검사하는 정밀기계 생산업체인데 해외 투자자들의 반응이 놀라울 만큼 뜨거웠습니다.”

정 본부장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해외 투자자들이 던지는 질문이었다. 단순히 공모가와 단기 차익 실현에만 신경쓰던 국내 투자자와 달리 이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와 배당 계획, 경영자의 리더십 등을 꼼꼼히 따졌다.

그는 “창업자들도 로드쇼에서 해외 투자자의 생각을 들으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눈?이익보다는 장기 관계 중시

동원증권은 2005년 SNU프리시전 딜로 받은 수수료에 회사 돈을 보태 서울대 공대에 장학금을 기부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도 장학금 전달식에 참석했다. “공대가 잘 돼야 기업이 발전하고 금융인들의 먹거리도 늘어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게 정 본부장의 설명이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정 본부장과 한국투자증권의 스타일을 엿보게 한다.

‘진우회(眞友會)’는 이런 정 본부장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진우회는 상장을 준비하는 중견·중소 및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정보 공유 모임으로 2004년 정 본부장이 만들었다. 현재까지 263개 회원사가 가입했으며 이 중 61개사(코스닥 57개, 코넥스 4개)가 상장에 성공했다. 5년 전에는 상장한 기업을 중심으로 진우회 최고재무책임자(CFO) 모임도 결성했다. 상장 이후 겪을 수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재무 컨설팅을 제공한다.

정 본부장은 “한국투자증권은 외환위기,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금융위기 때도 IPO 인력을 30명 수준으로 유지했다”며 “힘들 때 재무컨설팅을 제공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이어온 것이 현재 IPO 1위로 올라선 비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창재/서기열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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