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이라던 무역이득공유, '상생기금'으로 이름만 바꿔

입력 2015-11-27 18:22  

한·중 FTA 비준 잠정합의

시간에 쫓기는 여당·정부…야당에 사실상 굴복

FTA 수혜기업·이익규모 산정 어려워
누가 얼마 낼지 예측 불가능…불복도 못해



[ 임원기 기자 ] 정부와 여야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피해 농어촌을 지원하기 위해 농어촌상생기금(가칭)을 조성하기로 한 것은 세금징수 방식 무역이득공유제의 위헌시비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정부가 신설한 이런 기금에 기업들은 돈을 출연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세금 못지않은 준(準)조세라는 지적이 많다.

◆세금에서 기금으로 선회

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하되 기금 형태로 돈을 걷자는 주장은 지난해 처음 제기됐다. 작년 8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주최 제9차 희망농업포럼에서 이명헌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 방식의 무역이득공유제는 재산권의 과도한 제한, 자유시장 원칙 훼손, 부과대상에 대한 과세표준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며 “정부의 인센티브를 조건으로 한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농업지원기금을 조성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방안은 최근 한국농업경제학회가 농림축산식품부?제출한 연구용역 결과에도 들어가 있다. 농업경제학회는 FTA로 이득을 보는 기업의 자율기부를 바탕으로 기금을 설치하고, 이를 농어촌 지원에 활용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한·중 FTA 여·야·정 협의체 3차 전체회의에서 정부는 무역이득공유제의 대안으로 기금 설치를 제안했다.

FTA로 수혜를 보는 기업에 조세 부담을 추가하거나 부담금을 내게 하는 무역이득공유제를 주장해왔던 야당 역시 당시 정부의 이런 방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관계자는 당시 “매년 1000억원 이상의 기금을 안정적으로 조성하는 방안과 농어촌 특색에 맞는 지원사업이 구체화된다면 정부 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변형된 무역이득공유제

경제 전문가들과 산업계는 농어촌상생기금이 결과적으로 기업으로부터 돈을 걷기 위한 변형된 무역이득공유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기존 조세방식 무역이득공유제의 문제점도 그대로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선 어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느냐의 문제가 여전하다. 모든 기업에 기부금을 내라고 할 수 없으니 한·중 FTA로 이익을 보는 기업들에 돈을 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FTA로 수혜를 입었고, 이익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한국과 중국의 교역 규모로 볼 때 한·중 FTA가 발효되면 거의 전 경제주체가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며 “경제주체별로 얼마만큼의 이익과 손해를 보는지 구별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한 기업 관계자는 “한·중 FTA가 발효되면 농어촌뿐 아니라 다양하게 손해를 보는 산업이 있을 수 있고, 기업 중에도 이익과 손해를 보는 집단이 나뉠 수 있다”며 “다른 분야는 제외하고 농어촌만 지원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농어촌상생기금은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는 준조세가 돼 경제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FTA로 혜택을 보는 기업이나 이익 규모를 특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부금 방식은 대단히 모호하게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감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며 “차라리 이익 규모에 따라 세액을 계산할 수 있고, 불복하면 소송을 제기해 돈을 되찾을 수 있는 조세방식의 무역이득공유제보다 더 나쁜 규제”라고 말했다.

■ 무역이득공유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기업이 얻은 이익의 일부를 환수해 농·어업 등 FTA로 피해를 입은 산업을 지원하는 제도. 야당과 농민단체는 일정 금액을 세금처럼 기업으로부터 환수하는 ‘조세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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