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해외취업 1만명 시대 연다] "TAFE서 자격증 따 현지 취업"…호주로 몰려가는 한국 청년들

입력 2015-11-27 18:57  

현장 리포트

억대 연봉 기능인 양성…호주 시드니TAFE

연 200만명 직업훈련
한국 유학생 1만4000여명…30~40%가 직업훈련 받아

대기업 그만두고 호주행
시드니TAFE서 전기 실무과정…"자격증 따면 연봉 1억 넘어요"

호주 대학진학률 30% 불과
"사회에서 필요한 건 기능인력…석·박사 수만명이면 뭐하나"



[ 백승현 기자 ]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사원증 목걸이를 걸고 월급 100여만원 받느니 여기 호주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중학교 1학년 때 부모의 권유로 호주에 갔다가 2011년 귀국해 군복무를 마친 뒤 다시 호주로 간 박주현 씨(26)의 얘기다. 박씨는 호주 시드니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직업훈련기관)의 무역실무과정에 다니고 있다. 박씨는 “12학년을 마치고 별생각 없이 호주가톨릭대(ACU) 수학교육과에 들어갔는데 적성이 맞지 않아 한국의 전문대학 격인 TAFE에 다시 입학했다”며 “TAFE에 다니면서 영국계 호텔경영서비스업체인 ‘티룸’에서 일하고 있는데 2년 뒤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호주에서 ‘기능인’의 삶을 택하는 한국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4월 기준으로 호주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은 1만4303명으로, 이 가운데 약 30~40%는 직업훈련기관인 TAFE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있다. 기자가 최근 방문한 시드니TAFE에만 150여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다니고 있다. 호주 전역에는 78개의 TAFE와 4000여개의 정부인증 직업훈련기관(RTO)이 있다.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 호주로 건너간 설석민 씨(33)도 비슷한 사례다. 설씨는 2009년 대학을 졸업한 뒤 KCC와 신세계 이마트에서 전기엔지니어로 4년여간 근무하다 지난해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40대 후반에 명예퇴직을 걱정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비전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설씨는 시드니TAFE에서 전기과 디플로마과정을 밟고 있다. 생활비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에서 주 20시간을 일하고 받는 약 60만원의 주급으로 충당하고 있다.

시드니TAFE의 올티모캠퍼스에서 만난 설씨는 “2년 과정을 마치고 이르면 2019년께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전기기사 일을 하면 연간 수입이 15만호주달러(약 1억2400만원) 정도 되는 서호주의 공업도시 퍼스로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호주는 전체 인구(약 2250만명)의 9%인 200여만명이 해마다 TAFE에서 직업훈련을 받는다. 주 정부마다 따로 운영하던 직업훈련 체계를 연방정부로 일원화한 호주는 11개 산업협의체(SC)별로 3200여개 자격과정을 1만8000여개의 능력 단위로 세분화했다.

TAFE에 다니는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호주역량체계(AQF)에 따른 자격증을 따게 된다. AQF는 4단계의 기초 자격증과 디플로마, 고급 디플로마 등으로 나누어진 등급별 자격 체계다. 가령 3단계 기초 자격증은 자동차 정비 보조업무를 할 수 있는 자격이고, 한 단계 위인 4단계 기초 자격증은 자동차정비업체를 운영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자동차·항공·해양·건축 등 7개의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는 마델린카 술릭 시드니TAFE 총괄학장은 “호주 학생들은 12학년이 되기 전에 자신이 공부할 것인지, 기술을 배울 것인지를 미리 정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률은 약 30% 수준”이라며 “학생들이 미리 진로를 정하는 데다 국가가 능력별 자격증을 발급하다 보니 TAFE 졸업생의 취업률은 90%에 육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에서 필요한 인력은 석·박사 수만명이 아니라 기능인력”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현재 시드니TAFE에서 반도체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호열 교수(68)는 “처음 호주로 온 1988년 부인은 판사, 남편은 배관공인 이웃에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며 “호주는 용접·전기배선·운전 자격만 있어도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나라”라고 했다.

시드니=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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