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전역…이라크 파병 경험
"빗발친 총탄, 생각만해도 모골 송연"
[ 이현진 기자 ]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방아쇠를 당겼던, 최악의 20시간이었습니다.”
2012년 2월 아덴만(홍해와 아라비아해 사이)을 지나던 한국 벌크선 주변에 소말리아 해적들이 탄 소형선박(스키프) 6척이 몰려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벌크선은 엔진고장으로 속력까지 떨어졌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럽연합(EU) 함대는 이틀 정도 항해를 해야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떨어져 있었다.
당시 서보용 씨(38)는 영국과 독일의 특수부대 출신 3명과 함께 무장보안요원으로 승선했다. 해적선이 다가오자 영국인 팀장의 지시로 1차 교전이 시작됐다. 7시간의 피 말리는 싸움이었다. 해적들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2차 교전은 밤 11시께 해적들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총탄이 빗발치는 교전은 13시간이나 지속됐다.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합니다.”
서씨는 2000년 3월부터 2011년 5월까지 11년여 동안 특수전사령부 707대테러특수임무대대에서 복무했다. 상사로 전역한 뒤 2011년 6월부터 국내외 군사용역업체 보안요원으로 일하다가 2013년 4월 한화건설의 보안검색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707특수부대의 주 임무가 대(對)게릴라전 대테러전 인명구출 등 특수전이었다”며 “현재 임무와 비슷해 경력을 살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20여차례의 육·해상 교전을 치렀다. 주 활동지는 인도양 아덴만 지역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과 더반, 인도 뭄바이, 스리랑카 갈레, 오만 무스캇 등에서도 근무했다. 지금은 한화가 이라크 바그다드 동남쪽 10㎞ 지역에 건설하는 10만가구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대테러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서씨는 군복무 시절부터 군사용역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2005년 국군의 이라크 파병 때는 특수부대원 신분으로 한국의 고위급 관계자를 경호했다. “당시 다른 나라에서 온 경호원들을 유심히 봤다”며 “대부분 전직 특수부대 출신인 사람들이 민간군사회사의 용병으로 일하고 있는 데 흥미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후 취업을 위해 2010년 한국체육대 대학원에 입학해 안전관리경호학 석사학위를 땄고 외국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영어도 별도로 공부했다. 현재 이라크에 있는 서씨는 기자와 이메일 인터뷰를 하면서 업무상 보안 이유로 자신의 얼굴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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