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원조 흙수저' 정주영…16세 때 고향을 떠나다

입력 2015-11-27 20:12  

Cover Story - 정주영 탄생 100년


아산(峨山) 정주영은 1915년 11월25일 강원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6남2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산이 정식교육을 받은 것은 소학교 과정이 전부였다. 16세 때 아버지가 소를 팔고 받은 돈 70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공사판 막노동, 쌀가게 점원 등을 전전했던 그는 도전과 노력으로 세계적 기업가가 됐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시작으로 중동 건설시장 진출, 조선소 건설, 자동차 독자 개발, 서울올림픽 유치 등은 그가 적극적으로 앞장서 일궈낸 결과물이다. 서울올림픽 당시 재정적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외국 선수들의 숙소를 처음부터 일반 시민용 아파트로 지었고 대회가 끝난 뒤 시민을 대상으로 일반분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기가 막힌 발상이었다.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외국 투자자금을 유치했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 ‘수저계급론’이 팽배하다.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 사설은 정주영 회장이야말로 ‘원조 흙수저’라고 표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빈곤과 굶주림으로 허덕이던 나라에서 빈손으로 일어나 세계적인 기업군을 일궈냈다. 흙수저라고 좌절한 것이 아니라 그런 불행을 극복하고 금수저가 됐다. 금수저를 질투하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1991년 10월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세상에 내놨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든다고 했던 아산이다. 이런 정신을 찾기 힘든 시대다.

장두원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 (연세대 국어국문 2년) seigichang@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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