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호수 위 '낭만 고성(古城)'…순백의 신부를 닮았네

입력 2015-11-30 07:04  

'호반의 도시' 그문덴·바트 이슐·할슈타트

바트 이슐에는 왕가의 여름별궁
'비운의 황후' 엘리자벳의 숨결이




오스트리아에는 바다가 없다. 대신 수많은 호수가 있다. 빈과 잘츠부르크 사이에 있는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에 가면 해발 2000m가 넘는 알프스의 봉우리 사이로 76개의 호수가 반짝인다. 호숫가마다 둥지를 튼 소도시들은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물 위에 세운 고성(古城)이 돋보이는 그문덴, 황제가 사랑한 온천 도시 바트 이슐, 동화 속 마을 같은 할슈타트 등을 여행하다 보면 오스트리아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클래식 선율처럼 그윽한 그문덴(Gmunden)

19세기부터 브람스, 슈베르트 등 음악가들의 휴가지로 잘 알려진 그문덴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깊은 수심 191m의 트라운 호수를 끼고 있다. 트라운 호수는 수심이 깊을 뿐만 아니라 폭이 3㎞, 길이가 12㎞에 이른다. 호수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하다.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합스부르크 왕족들은 휴가 때면 트라운 호수에서 한가롭게 유람을 즐겼다고 한다. 1872년부터 지금까지 운항하는 증기유람선 기젤라(Gisela)가 한가롭게 떠 있는 호수는 평화롭고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우아하다.

호수 옆에 있는 시청사는 1574년에 세워졌다. 중세 르네상스 시대부터 441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든든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청사 시계탑은 24개의 도자기 종(鍾)이 매달려 있다. 때마침 종이 바람에 움직이며 슈베르트의 ‘송어’를 연주한다. 하루 다섯 번 음악을 연주하는 ‘종악’은 청아하게 마을을 감싸고 돈다. 보다 아찔한 전망을 원한다면 그륀베르크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발아래로 산에 둘러싸인 푸른 호수가 오롯이 내려다보였다.

‘오르트 성(Shloss Ort)을 보지 않고는 그문덴을 논할 수 없다’고 한다. 호수 한가운데 백조처럼 떠 있는 성을 본 순간 감탄사가 툭 튀어나왔다. 양파 모양 지붕을 왕관처럼 쓰고 있는 순백의 자태가 ‘그림 같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고혹적이었다. 이 성을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가 그문덴을 찾는다. 오르트 성은 오스트리아의 연인 누구나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하는 곳이다. 오르트 성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길이 120m의 나무다리다. 다리를 건너는데 구름 사이로 그윽한 빛줄기가 성을 향해 쏟아졌다. 성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아베마리아’가 울렸다. 회랑 끝 예배당에서 흘러나온 그 노랫소리는 천사의 인사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숨결’ 바트 이슐(Bad Ischl)

트라운 강과 이슐 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온천도시 바트 이슐은 합스부르?왕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68년간 통치한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1853년 휴양차 바트 이슐에 들렀다 바이에른 공주인 엘리자벳(예명 시시)을 만나 사랑에 빠져 1년 뒤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황제는 바트 이슐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결혼 선물로 받은 저택을 여름별궁으로 개조했다. 황제에게 눈도장을 찍으러 몰려온 귀족들도 덩달아 별궁 옆에 별장을 지었다.

바트 이슐에 로코코 양식의 우아한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유다. 여름별궁 카이저 빌라(Kaiservilla) 안으로 들어가자 백발의 노신사가 불쑥 나타났다. 자신이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합스부르크 씨는 황제가 사냥한 사슴뿔 컬렉션부터 19세기 절세미녀 시시 황후의 드레스에 관한 이야기까지 옛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줬다.

잘츠카머구트의 진주, 할슈타트(Hallstatt)

할슈타트 호수의 남서쪽 다흐슈타인 산자락에 자리한 할슈타트는 인구 800명의 작은 마을이다.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뛰어난 경관과 긴 역사를 품고 있다. 켈트어로 소금을 뜻하는 ‘할(Hal)’과 마을을 뜻하는 ‘슈타트(Statt)’가 합쳐진 할슈타트는 기원전 2000년께 세계 최초의 소금 광산이 개발된 곳이다.

할슈타트에는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간이역에 내려 배를 타고 마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호수 너머 비탈진 언덕 위의 집들이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선명하게 비쳤다. 동화 속 마을 같은 풍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마르크트 광장에서 시작해 마음 가는 대로 호숫가 주변을 걸었다. 곳곳에서 마주친 그림 같은 풍경에 발길을 멈추기를 여러 번, 고단한 여정에 지친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이것만은 꼭!
제철 사슴요리 뒤에는 황제의 디저트

잘츠카머구트의 소도시들은 기차로 가는 것이 편하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그문덴까지 기차로 약 2시간30분 걸린다. 그문덴에서 바트 이슐까지는 약 40분 거리. 바트 이슐에서 할슈타트까지는 기차로 40분 가서 배로 갈아타고 10분을 더 가야 한다. 잘츠카머구트 지역의 소도시는 고산지역이고 호숫가에 있어 한국의 겨울보다 날씨가 추운 편이다.

잘츠카머구트에는 뛰어난 맛집이 많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그문덴에는 사냥꾼들이 잡은 사슴고기가 제철이다. 시청 맞은편 제호텔 슈반(Seehotel Schwan)에선 다양한 사슴 요리와 트라운 호수 풍경을 함께 음미할 수 있다. 바트 이슐의 유서 깊은 카페 차우너(Zauner)에 가면 프란츠 요제프 황제도 즐겨 먹던 디저트가 가득하다. 할슈타트 현지인들도 입을 모아 추천하는 레스토랑 그뤼너 바움(Grner Baum)은 근사한 전망과 탁월한 맛을 겸비하고 있다. 와인 리스트도 훌륭하다.

그문덴(오스트리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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