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공공조달 인증 개혁으로 기업 경쟁력 살린다

입력 2015-11-30 17:49  

인증보유업체 우대해온 조달시장
과다 인증 유발해 중기 부담 가중
다다익선식 구조 개혁해 나갈 것

김상규 < 조달청장 >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 건립과 잦은 전쟁으로 많은 국고 지출을 초래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명재상 콜베르는 세금을 낼 국내 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었다. 방직과 염색에 관한 표준 제조공정을 의무화한 것도 프랑스 섬유산업의 경쟁력 향상과 관계가 있다. 천의 길이, 두께 등을 규정하고 불합격 제품은 공개적으로 전시하며, 생산한 사람에게는 벌을 줬다. 경제를 키우고 재정을 확보하는 데 인증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한국도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고 기업의 기술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인증을 활용해 왔다. 국민들에게 안전하고 좋은 제품을 공급한다는 주장도 한몫했다. 그러다 보니 환경·보건, 안전, 신기술, 디자인 등 온갖 정책의 수단으로 인증이 활용되고 있다. 인증기관은 수입을 늘리기 위해 국제기준보다 과다하거나 선진국에 없는 인증도 도입했다.

조달시장에서도 인증 보유 업체를 우대해 왔다. 인증별로 점수를 부여해서 인증이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획득하도록 했고,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배점을 부여했다. 인증 유형도 여러 기관의 요구를 가급적 수용하는 방향으로 운용했다. 그러다 보니 인증 보유 여부가 납품업체 선정을 좌우하게 됐다. 그 결과 2006년 114개이던 인증 수가 2015년에는 203개로 1.8배 늘었고, 기업당 인증 보유 수도 평균 3.2개에서 10개로 3.1배 증가했다. 당연히 중소기업의 인증 부담도 10년 새 2.3배로 증가했다. 영세 중소기업은 매출의 6%까지 인증 비용을 부담한다며 울상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인증이 제품의 품질을 보증한다는 단순한 믿음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인증을 참가자격 등으로 활용한다. 안전이나 품질 등 기준을 충족했다는 생산자의 자발인증제도가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강이나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정부 차원의 강제 인증은 없다. 거의 모든 전기전자 제품에 부착된 UL은 민간 인증 마크다. 유럽연합(EU)은 CE 마크로 공동 규격의 제반 여건을 마련하고 있다. 인증제도가 단순하고 민간 중심이다.

우리도 미국 등 선진국처럼 인증제도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구조조정이다. 조달청은 다다익선식 인증 획득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아무리 많은 인증을 획득해도 평가에서는 한 개의 인증만 점수를 받게 된다. 점수가 높고 기술력에 도움이 되는 인증 위주로 재편된다.

조달청 계약물품으로 등록할 때 요구하는 인증도 돈이 적게 드는 시험성적서로 바꾸기로 했다. 보통 인증 한 개에 200만~300만원의 돈이 드는데 시험성적서는 20% 정도의 비용으로 가능하다. 현재 3288개 조달 기업이 15만개의 인증을 보유하고 있다. 5만개만 줄여도 약 1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한두 번의 조치로 인증개혁이 마무리될 수 없다. 미국 등 민간 인증 위주의 사례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 과도기다. 올해 10월 수출이 지난해에 비해 15.8%나 줄어드는 등 우리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인증개혁이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런 경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개혁으로 우리 기업의 부담이 경감되고 경쟁력이 살아났으면 한다.

김상규 < 조달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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