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2년7개월간 '몰카' 찍은 30대 남성 "난 무죄요"

입력 2015-12-01 18:43  

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공소장 불명확하단 이유로
국선변호사, 2심서 무죄 주장
검찰은 공소장 보완해 제출

법원 "범행횟수 369회 달해"
징역 8개월 실형 선고



[ 김인선 기자 ] “여장을 하고 여자화장실을 드나들어도 아무도 제가 남자란 걸 모르더군요. 묘한 쾌감이 들었습니다.”

김모씨(36)는 2013년 7월 자신의 모교인 서울의 A대학 여자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긴 머리 가발에 스타킹을 신고 화장까지 한 그는 누가 봐도 여자였다. 체구도 호리호리했다. 김씨는 평소처럼 휴대폰 카메라 버튼을 눌러 동영상이 촬영되도록 조작했다. 미리 준비한 생리대 비닐 케이스에 전화기를 넣고 화장실 안에 숨겨놓았다. 그러곤 화장실을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날은 그에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가 몰카를 설치했다는 것을 당시 화장실을 이용하던 학생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사법고시생이었던 김씨는 며칠 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김씨는 이듬해 2월 재판에 넘겨졌다. 2010년부터 범행이 발각되기 전까지 화장실을 찾은 불특정 다수 여성?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부위를 그들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혐의를 받았다. 1심에서 김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수강을 선고받았다.

사건은 2심에서 뜻밖의 반전을 맞는다. 쌍방의 항소로 2014년 6월 2심 재판이 시작됐다. 그런데 김씨의 국선변호인이 무죄를 주장하고 나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사건 공소장에는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공소제기 절차에 문제가 있으므로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선변호인의 주장을 검토해보기로 했다. 검찰에서 제출한 범죄일람표를 살펴봤다. ‘일시 및 장소:2010. 초순경 일시불상의 A대학 경영도서관 여자 화장실, 피해자:불특정 다수인, 범죄수법:여자화장실에서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 형사소송법 254조 4항은 “공소사실의 기재는 범죄의 시일, 장소와 방법을 명시해 사실을 특정할 수 있도록 기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검사는 공소장에 범행 일시, 장소, 범죄수법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변호인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이에 검찰은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고 나섰다. 공소장 변경이란 검사가 법원의 허가를 얻어 공소장에 기재한 공소사실 또는 적용 법조의 추가, 철회 또는 변경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담당 검사는 김씨의 범행 일시와 수법 등을 구체적으로 찾아내 법원에 제출했다.

김씨 측은 항소심에서 심신장애를 주장했다. “재판장님, 피고인 김씨는 2013년 8월 M신경정신과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성적정숙장애란 진단을 받고 약 두 달간 외래 치료를 받았습니다.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주십시오. 또 김씨가 촬영한 동영상 중에는 여성의 뒷모습처럼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부위가 아닌 것(사실오인)도 있습니다.” 모든 판단은 재판부에 맡겨졌다.

◆법원의 판단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홍이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원심을 깨고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8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도 함께 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횟수가 369회에 이르고 범행이 이뤄진 기간도 2년7개월에 달하며 촬영된 영상 내용이나 수법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며 “피고인은 피해자의 성적 자유 및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를 매우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의 심신장애 주장과 사실오인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상고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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