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향신료가 귀했던 중세 유럽에서는 후추가 최고의 사치품이자 귀중품이었다. 향신료는 귀족들의 전유물이란 통념을 깨고 새로운 시장과 해상 운송로를 개척한 건 포르투갈이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업이나 강력한 군사력이 없던 포르투갈에 바닷길 개척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자원이 부족한 약소국의 절박함과 결핍이 만들어낸 놀라운 ‘혁신’이었던 셈이다. 포르투갈의 바닷길을 통한 신시장 개척은 한국 중소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시장은 협소하고 그나마도 대기업의 강한 시장지배력으로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수출 기업은 내수 기업에 비해 고용증가율은 3.8배, 1인당 매출증가율은 1.6배에 이른다. 수출 시장을 향한 내수 기업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이유다. 수세기 전 포르투갈의 바닷길 개척이 대포를 앞세운 무력(武力)을 기초로 했다면, 우리 수출 기업의 신흥시장 개척은 매력(魅力)으로 승부해야 한다. 국가 간 무역에서 최고의 매력은 신기술과 신제품인 점을 감안하면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차세대반도체(SSD), 화장품, 신약 등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중후장대 수출 산업을 뒷받침할 다음 주자들이 성장하고 있는 점은 새로운 수출 항로 개척의 청신호라 할 만하다.
유가 급락과 전 세계적인 교역 감소 여파로 올 한 해 수출이 고전하고 있지만 희망적인 신호도 감지된다. 미국과 중국 양대 소비시장에서 한국 수출품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고, 수출 규모도 세계 6위로 한 계단 올랐다. 정부는 내수 기업의 수출 기업화를 위해 기업별 수출 역량에 맞춰 직수출을 위한 금융지원을 강화하고 있고, 전문 무역상사를 통한 간접수출, 대기업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해외 진출 채널 다변화도 추진 중이다. 무역보험공사도 수출 초보 기업 등에 10만달러까지 지원하는 ‘수출 첫걸음 희망보험’을 도입했다.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활용한 ‘역(逆)직구’와 수출·세무신고 간소화 등 제도적 환경 변화도 우호적이다.
부족한 전문 인력과 자금, 제한된 시장정보 등으로 고전하는 중소기업들이 결핍을 딛고 수출 기업으로 변신하는 혁신에 무역보험이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김영학 <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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