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도 메르스 사태 등 겹치며
소비 심리 여전히 '썰렁'
미국 금리인상 임박
장기적 경제흐름 읽고 선제적 금리조정 필요
지난해 8월 이후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포인트 인하됐지만 실물경기에 대한 영향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다. 금리 인하를 시작한 이후부터 올 2분기까지도 우리 경제는 0%대 성장을 지속해왔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는 여러 경로를 통해 모든 수요부문에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낮아지면 저축할 유인이 줄면서 소비가 늘고 기업도 이자 부담 감소로 투자를 확대할 여지가 커진다. 또 주식, 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주택건설과 소비를 진작시킨다. 금리 인하는 원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중 최근 효과가 비교적 뚜렷한 쪽은 자산 경로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과 저금리에 힘입어 주택경기가 호전되고 민간 주택분양이 크게 늘면서 건설투자가 회복되는 중이다. 경영사정 악화에도 기업 설비투자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 역시 저금리가 어느 정도는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투자 외의 수요부문에서는 정책효과를 찾기 어렵다. 소비는 올 3분기까지 1.8%의 낮은 성장에 그치고 있다. 금리 인하에도 가계는 지갑을 열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소비성향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최근 다소 회복되는 분위기지만 금리 인하보다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반등 효과와 소비세 인하의 영향이 컸다. 수출 역시 원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세계경기 위축, 국가 간 경쟁 심화로 인해 점점 더 부진이 심해지는 모습이다. 금리 인하가 실물경기를 회복시키는 효과는 작고 가계부채 등 부작용만 확대시킨다는 우려가 큰 이유이다.
정책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데에는 불운했던 탓도 있다. 예기치 못한 충격들이 소비의 흐름을 꺾어놓곤 했다. 지난해 세월호 사태 이후 소비심리 위축현상이 한동안 지속됐으며 올해에는 저유가로 소비가 회복 조짐을 보이던 시점에 메르스가 확산됐다.
하지만 통화정책의 약효가 떨어지는 것은 우리뿐 아니다. 세계경제가 같이 겪는 현상이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세계적인 서비스화 추세와 자본재 공급과잉, 정보기술(IT) 확산에 따른 소프트화의 진전으로 대규모 자금의 필요성이 줄면서 금리가 낮아져도 투자 수요가 늘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기적 성장 저하 추세, 선진국 재정위기, 개발도상국 외채위기 등에 따른 경제 불확실성 증대, 고령화에 따른 저축 유인 증가 등으로 가계 역시 통화완화로 늘어난 돈을 소비하기보다는 은행에 다시 예치하고 있다.
금리정책의 효과가 줄어든 데 대해 선진국들은 확장정책의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해왔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유례없는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해 경기위축과 디플레이션 압력을 극복했다. 과감한 통화확장에도 인플레가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실물경기와 금융시장의 관계가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통화정책의 선행성이나 적극성이 높지 않았는데 이 역시 정책효과가 크지 않았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금리 인하 효과는 4~6분기 후에 가장 높게 나타난다. 긴 시차를 고려한다면 향후 경기에 대한 예측을 통해 미리 금리를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전망이 계속되면서 금리 조정은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정책금리가 경기흐름에 후행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난다.
정책 간의 조합도 원활하지 않았다. 가계부채 증대 효과가 있는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면서 정작 부채 우려로 실물경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금리정책이 제약을 받았다. 가계부채가 우려된다면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대출규제 등 미시적 정책을 우선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거의 확실시되면서 이제는 우리도 통화정책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이다. 우리나라 성장 잠재력 저하, 통화와 물가 간의 관계 변화 등 장기적인 경제구조 변화를 고려해 통화정책의 틀을 다시 점검해볼 시기다.
이근태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gtlee@lger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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