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패션 이야기 소재…산업화 역군들의 일과 사랑
선한 사람은 행복해지고 악한 사람은 외로워지는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그려
[ 유재혁 기자 ] 매일 오전 9시(월~금요일)에 시작하는 KBS 2TV 일일 드라마 ‘별이 되어 빛나리’(연출 권계홍, 극본 유은하·조소영)의 시청률이 방송가에 화제다. 아침 일일 드라마로는 드물게 10%대 시청률을 거뜬히 유지하고 있어서다. 특급 스타를 앞세운 대형 미니시리즈도 10%를 넘기기 어려운 요즘이다. 이 드라마의 제작비는 미니시리즈의 8분의 1 수준이다. 인기 비결은 뭘까.
지난달 25일 KBS 수원 드라마센터 ‘별이 되어 빛나리’ 촬영 현장을 찾았다. 여주인공 ‘봉희’ 역을 맡은 고원희와 봉희의 라이벌이자 봉희를 괴롭히는 역할로 나오는 ‘모란’ 역의 서윤아가 재봉틀 앞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봉희가 모란에게 말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선 억울하고 분해도 참아야 한다는 걸 모르는 네가 더 바보 같아.” NG 없이 ‘컷’ 사인이 난 뒤에도 긴장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연기자들이 배역에 깊이 몰입해 있다는 증거다.
이 드라마는 1960년대 아버지의 죽음과 가문의 몰락 후 해방촌으로 온 봉희가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시청자들은 잘 살기 위해 매진하던 그 시절로 추억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목조 건물과 비포장도로, 공중전화와 야학이 등장하는 시공간에서 패션에 대한 관심이 막 태동한다. 미니스커트는 한국에 곧 상륙할 참이다. 방직공장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의류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우리 국민도 멋 좀 부리고 삽시다”는 정부 관료의 대사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패션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것임을 시사한다.
그 중심에 있는 봉희와 모란의 대결이 흥미롭다. 봉희는 가난하지만 착하고, 배운 건 없지만 패션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난 반면 모란은 모든 면에서 정반대다. ‘선과 악의 대립’은 새로울 게 없는 소재지만 이 드라마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선한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고, 악한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구조적으로 그려낸다.
봉희가 사는 집은 가난하고 궁벽하지만 웃음이 넘친다. 정이 있고, 작은 기적들이 샘솟는다. 밤이면 서로 꼭 붙어 자야 할 만큼 비좁은 방에서도 식구들은 서로를 보살핀다. 모란은 예쁜 양옥에서 공주처럼 살지만 세 식구가 모인 식탁에선 서로 상처를 주는 말이 오간다. 집안에 온기라고는 없다. 어머니는 살인죄를 숨긴 채 살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모란은 명성방직 후계자 종현(이하율 분)을 사랑하지만, 악痔?봉희를 원한다. 봉희와 모란의 대결은 사랑뿐 아니라 일로도 확대된다. 모란은 봉희의 디자인을 훔친다. 예전에 모란 엄마도 그랬다.
드라마는 산업화 시대 주역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진다. 봉희는 열심히 옷을 만든다. 옷가게 주인은 출신을 차별하지 않고 능력 위주로 직원을 평가한다. 종현은 명성방직 후계자이면서도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관심이 많다. 이들이 산업화 시대에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임을 상징한다.
드라마는 총 120부작 중 반환점을 돌아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봉희와 종현의 사랑이 이뤄질지, 악역들의 비밀은 어떻게 드러날지, 봉희는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이룰지 등 관전 포인트가 많다.
여성 드라마 감독인 권계홍 PD는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에 대해 “1960년대 패션 이야기라는 소재 자체가 신선하다”며 “임호 씨가 첫 악역에 도전하는 등 연기자들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다 뮤지컬과 연극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를 대거 캐스팅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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