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민 기자 ] 조선시대 성리학 거두인 퇴계 이황을 따르는 퇴계학파의 본산은 경북 안동에 있다. 퇴계학파는 조선 중기부터 최근까지 400여년간 학파 내 논쟁인 병호시비(屛虎是非)를 겪었다.
병호시비란 퇴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75년 안동 월곡면에 건립된 호계서원(옛 여강서원)에 1620년 추가로 봉안된 학봉 김성일(1538~1593)과 서애 류성룡(1542~1607)의 위패 중 어느 쪽을 상석에 둘 것이냐를 두고 촉발된 논쟁이다. 서애 지지파는 영의정을 지낸 서애가 윗자리인 퇴계 왼쪽에 와야 한다고 했고, 학봉 지지파는 나이가 네 살 위인 학봉을 상석에 둬야 한다고 맞섰다. 갈등 끝에 1812년 서애 지지파가 서애 위패를 인근 병산서원으로 옮겨버렸다.
이후 집권한 흥선대원군이 중재에 나섰지만 서애파와 학봉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가 난 흥선대원군은 1871년 호계서원을 철폐해 버렸다.
갈등은 최근까지 이어졌고 김관용 경북지사가 중재에 나섰다. 영의정을 지낸 서애를 왼쪽에 놓되 유학자 대산 이상정(1711~1781)의 위패를 학봉 곁에 놓아 학봉을 받드는 모양새를 갖추게 하자는 것이었다. 김 지사의 중재안에 유림이 합의했다.
2013년 5월 경북도청 【?열린 확약식(사진)에는 ‘갓 쓰고 도포 입은’ 안동지역 유림과 문중 대표 40여명이 모였다. 김 지사도 같은 차림이었다. 참석자들은 길이 2m가량의 두루마리에 한문으로 쓴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경상북도와 유림은 호계서원을 안동댐 옆 민속촌 내에 복원하기로 했다.
대구=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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