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인사철 '담피아'들의 맹활약…승진보다 간절한 팀원 교체

입력 2015-12-07 18:45  

직장인들의 싱숭생숭 인사철

한 모금 뿜을 때마다 사내정보 '모락모락'
끊었다던 김 과장도 흡연실 '들락날락

혹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가슴에 품어온 '그 봉투' 꺼내야하나



[ 강현우/이정희 기자 ] 인사철이다. 1년에 한 번, 김과장 이대리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는 시기가 왔다. 많은 기업이 한 해 성과를 정리하는 연말에 인사도 단행한다. 인사에 따른 환송·환영회와 송년회까지 겹친 회식 자리는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인사철을 맞은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연을 모아봤다.

인사철이 ‘방학’이라고?

인사철이 되면 퇴근 시간은 늦어지기 마련이다. 인사 대상인 임원이나 부장 등 팀장급들이 이래저래 눈치를 보면서 사무실에 남아있다 보면 팀원들도 덩달아 하릴없이 사무실을 지키기 일쑤다.

하지만 인사철에 퇴근이 오히려 빨라지는 기업들도 있다. 인사 대상 고위직들이 ‘줄’을 대기 위해 저녁 약속을 줄줄이 잡는 기업들이다. 이렇게 실력보다는 연줄로 승진이 결정되는 기업 부근의 고급 일식집이나 한정식집은 인사철이 되면 방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한 공기업에 다니는 조모 과장(38)은 “회사에 10년 이상 다녀보면 괜히 사무실에 남아있는 것보다 그 시간에 승진에 힘을 써 줄 수 있는 상사나 인사팀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며 “덕분에 우리 회사 인사철은 인사 대상이 아닌 직원들에겐 ‘방학’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들어올 땐 순서 있어도 나갈 땐 없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최모 대리(34)는 인사철을 앞두고 입이 바싹 말라가고 있다. 최 대리가 속한 부서의 직원들은 ‘이번에 반드시 나가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부서장은 이미 잔류가 결정됐다. 문제는 최 대리를 포함해 다섯 명이 속한 팀을 맡고 있는 박모 팀장이다. ‘인사는 나와봐야 안다’고 하지만 부서장이 총애하는 박 팀장도 남을 가능성이 높다.

팀원들이 보는 박 팀장은 전형적인 ‘최악의 상사’다. 무능한 것은 기본, 팀원들의 업무를 자신의 성과인 양 가로채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팀원들의 작은 잘못을 꼬투리 잡아 ‘네가 그러니까 승진을 못 한다’, ‘팀장을 무시한다’ 등의 폭언까지 일삼는다. 그러면서도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데엔 천부적이어서 윗사람들은 박 팀장을 유능한 직원으로 여긴다. 그동안 팀장 교체를 위해 함께 기도했던 팀원들은 이제 ‘각자 탈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모 차장은 틈날 때마다 인사팀을 찾아가 팀을 바꿔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팀장에게 은근히 대들면서 태업을 하는 과장도 있다.

최 대리는 팀에 있던 기간이 6개월로 가장 짧다. “네가 막내?가장 팀에 늦게 왔기 때문에 희생해야 한다”는 얘기를 매일같이 듣고 있다.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는 몰래 옆 부서 팀장에게 자신의 강점을 설명하면서 줄을 대고 있다. “들어올 땐 순서 있어도 나갈 땐 없다고요. 누가 나갈지 닥쳐봐야 아는 것 아니겠어요. 팀장 때문에 스트레스성 탈모도 생겼는데. 이번 인사에서 ‘물 먹는’ 것은 승진 누락이 아니라 팀을 못 벗어나는 거예요.”

인사 정보 공유하려다 그만

한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 과장(38)은 사내 소식통으로 꼽힌다. 부서장들의 승진 여부부터 신입사원의 실수담까지 그의 레이더망을 거치지 않는 정보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런 그는 최근 이른바 ‘찌라시’로 불리는 사내 정보를 다른 직원들과 공유하다가 큰 실수를 했다. 동기들이 모여있는 단체 채팅방에 올리려던 임원들의 인사 소문을 실수로 부서원 전체가 들어와 있는 채팅방에 올린 것. 승진 대상자였던 김 과장의 직속 임원도 그 채팅방 안에 있었다. “올리자마자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죠.”

김 과장은 해당 임원에게 불려가 한동안 혼이 났다. 그는 “그래도 해당 임원이 승진하는 것으로 나온 소식이었고 결국 승진도 했기에 망정이지 인사 명단에 없었으면 회사 생활이 매우 어려워질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흡연 늘어나는 박 계장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모 계장(34)은 요즘 담배를 태우는 횟수가 늘었다. 하루 반 갑을 피우다 요즘은 한 갑도 넘기기 일쑤다. 다른 고민이 있어서는 아니다. 내년 초 인사를 앞두고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참 부장이나 인사위원회에 들어갈 선배들에게 승진, 부서배치 등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본인의 평판, 보완할 점, 배치를 받고 싶은 부서장의 의중 등을 듣는다.

박 계장뿐만이 아니다. 다른 동료들의 흡연 횟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심지어 올해 초 금연에 성공했던 한 동기는 지난주부터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박 계장은 “예전에는 단순히 인사 담당자나 고참들에게 잘 보이려는 분위기였다면 요즘 인사철은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며 “고참들에게 얘기를 듣고 부족한 점을 보완한 뒤 인사에 뒤탈이 없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퇴직 고민하던 중에 ‘뜻밖의 이직 제안’

소프트웨어 제작 회사에 근무하는 윤모 대리는 최근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경쟁 업체에 있던 친구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은 것. 고민을 거듭하던 윤 대리는 친구에게 “회사 프로젝트가 완성되지 않아 둥지를 옮길 수 없다”고 거절했다. 며칠 뒤 윤 대리는 부장으로부터 호출받았다. 일련의 이야기를 친한 회사 선배 한 명에게 털어놨는데 그 내용이 부장 귀에까지 들어간 것이었다.

부장은 “회사를 생각하는 만큼 윤 대리를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연말 인사고과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은 물론, 프로젝트가 끝나면 별도의 휴가를 주기로 약속했다.

윤 대리는 “이직 제안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져 좋지 않은 말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라며 “이직도 좋지만 우선 내게 떨어진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 일러스트=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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