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정수 기자 ] “위원회 명칭에서 ‘공정’이라는 단어를 빼고 ‘경쟁’을 넣으면 어떨까요?”
최근 만난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공정위 본연의 업무는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라며 “위원회 명칭에 ‘공정’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탓인지 갑을관계 해소 방안 관련 민원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공정위와 비슷한 업무를 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와 유럽연합 경쟁위원회 명칭에는 ‘공정’이란 단어가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사람들은 공정위라고 하면 ‘대기업에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해 중소기업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기관’을 먼저 떠올린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소관 법령으로 들어온 ‘대규모 유통업법’, ‘대기업집단 규제 조항’ 등의 영향이 컸다. 기업을 옥죄던 공정위의 고압적인 조사 관행도 원인 중 하나다.
최근 공정위 내부에서 이런 평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리하게 기업을 규제하는 기관이란 꼬리표가 붙은 것에 대한 반성이다.
공정위는 고심 끝에 대책을 내놨다. 지난 10월 발표한 ‘사건처리절차 3.0’이 대표적이다.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 조사관을 제재하고 공정위의 저인망식 조사에 대한 기업의 거부권 행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행정예고 중인 ‘대규모 유통업법 과징금 부과 고시’ 개정안도 ‘자성’의 연장선이다.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사이에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 행위가 발생하면 지금은 두 업체 간 ‘전체 거래금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결정한다. 고시가 개정되면 불공정행위와 직접 연관이 있는 거래금액만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
일부 시민단체와 야당에서는 공정위의 ‘기업 봐주기’란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을 전공한 교수나 변호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규제를 합리화한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가 기업과의 과징금 관련 소송에서 패소율이 높아지자 규제 합리화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공정위의 새로운 정책 방향을 반긴다. 모처럼 규제 대상과 규제 집행 기관 모두 만족할 만한 정책이 나온 것이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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