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글로벌 분업 새판 짜기

입력 2015-12-10 18:00   수정 2015-12-11 05:09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는 당시 휴대폰산업의 세계적 지형을 일거에 바꿔놓은 일대 사건의 서막이었다. 애플의 사업재편은 새로운 글로벌 분업을 탄생시켰다. 기획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철저하게 애플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짜인 애플 주도 각본이었다. 미국은 맨 앞단의 기획, 디자인과 맨 뒷단의 마케팅을, 한국 일본 독일 등은 부품을, 중국은 조립을 맡는 식이다. 기존 분업 구도에 안주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기업에는 큰 충격파였다. 지금은 애플발(發) 사업재편이 미국 전체 기업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경기 침체 속 가속화하는 중국발 사업재편도 큰 변수다. 중국의 산업구조 고도화는 기존 동북아 분업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한·중·일 간 신산업 전략이 서로 빼닮은 데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전통산업의 주도권이 속속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마지막 남은 보루라는 소재·부품산업 분업 구도마저 슬금슬금 무너지는 중이다.

세계는 사업재편 경쟁

한국이 아직은 괜찮다는 반도체산업만 해도 그렇다. 중국은 미국 일본 등 반도체 관련 기업 인수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내세워 마이크론을 중국에 넘기지 않을 거라지만 그것도 장담하기 어렵다. 동태적 경쟁 환경에서는 국익도 시시각각 달라진다. 더구나 글로벌 분업을 주도하려는 미국으로서는 생산의 어느 한 과정을 타국이 독점화하는 걸 원할 리 없다. 언제든 대체 가능 상태가 최상이다. 과거 일본 주도 메모리 반도체에 한국이 뛰어든 것처럼 한국과 중국의 경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중국 내 반도체 수요만으로도 반도체산업을 일으키는 데 충분하다는 중국의 국익, 글로벌 분업체제에서 대체 가능성을 따지는 미국의 국익 사이에 접점이 생기는 순간, 반도체산업의 세계적 지형도 일거에 바뀔 수 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도 글로벌 분업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분업을 주도하겠다는 미국, 기존 분업 구도를 와해시키는 중국 등을 전제로 한 독일발 사업재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분업 구도에서 독일 몫을 찾겠다는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 20년간의 장기 침체를 일본이 과거의 글로벌 분업 구도에서 제때 벗어나지 못한 비용으로 여기는 듯 일본발 사업재편은 열풍 그 자체다.

한국, 분업에서 소외되나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이 새로운 글로벌 분업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게 한국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이 제조 중심으로 진입에 성공한 과거의 글로벌 분업 구도가 더 이상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어떤가.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기업은 절박함을 느껴 선제적 사업재편에 나서지만 법적·제도적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닌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사汰羚資?무슨 안방 게임인 양 사업촉진 법안을 놓고 대기업 특혜 운운하며 발목을 잡고 있다. 여기에 연구시스템, 교육시스템 등도 급변하는 글로벌 분업과 동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창조경제 구호가 공허하게 들린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백날 하면 뭐하나. 한국이 새로운 글로벌 분업을 주도하거나, 변화된 구도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샌드위치 위기’는 중간에라도 끼어 있는 것이지만 이대로 가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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