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버 평균 260야드…12세 세계주니어대회 제패
올해도 세계대회 2승 올려…차세대 'LPGA 퀸' 기대주
"샷 할때 똑바로 날리려면 왼팔꿈치는 팽팽히 펴주고
오른팔꿈치 느슨하게 해야"
[ 이관우 기자 ]
특기도 취미도 골프다. 자기소개 관심사난에도 골프라고 적는다. 한 번쯤은 눈길을 줄 만한 아이돌 가수 그룹은 안중에도 없다. 그야말로 ‘기·승·전·골프’다. 지독한 골프 사랑에 빠진 15세 ‘골프 천재’ 전영인을 지난 8일 경기 안산시 대부도 아일랜드CC에서 만났다.
◆260야드 펑펑…귀여운 ‘소녀장사’
키 161㎝의 아담한 체구, 탄탄한 허벅지, 귀여운 얼굴. 언뜻 ‘빨간바지’ 김세영(22·미래에셋)을 연상시켰다.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리디아 고 언니랑 한판 붙어 이기는 거예요. 2년 뒤엔 LPGA(미국여자프로골프)에서 랭킹 1위에 오르는 것이고요.”
거두절미하고 도발적이다. ‘세계랭킹 1위, 올 시즌 LPGA 5승의 리디아 고와 붙는다고?’ 박인비(27·KB금융그룹)와 전인지(21·하이트진로)를 이을 재목이라는 평가를 듣긴 했다. 하지만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가 티 박스에 올라갔다. 찬바람이 불었다. 갑작스러운 오한에 입술이 바르르 떨려왔다.
“추우면 떨지만 골프할 때는 한 번도 떨어본 적이 없다”며 생글거리던 그가 먼저 티샷을 날렸다.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간 공은 페어웨이 한가운데 떨어진 뒤에도 다시 한참을 굴렀다. 265야드(242m) 지점. 서너 번 이 코스에서 골프를 했지만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곳이다. 그의 페어웨이 적중률은 93%. 그린 적중률(77%)은 겨울이라 그린이 딱딱해지지만 않았어도 100%에 가까울 뻔했다. 아이언이든 웨지샷이든 공은 항상 핀으로 향했다.
전반을 2오버파 대 9오버파로 뒤진 후 그늘집에서 그의 프로필을 다시 한 번 봤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10년 미국 US키즈챔피언십 9타 차 역전 우승, 2012년 세계월드주니어챔피언십 제패, 지난해 미국 주니어 대표 발탁, 올해 세계주니어대회 2승. 가장 자신있는 샷은 드라이버인데 평균 비거리가 260야드(헤드 스피드 97마일)라고 적혀 있었다. 2011년에는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던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영국 방송사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매치플레이를 주선하기도 했다.
◆상·하체만 잘 꽈도 확 달라져
‘괴물’을 만났다. 그는 “국내외 대회에서 또래 중 나보다 똑바로 멀리 날린 경우는 거의 못 봤다”고 했다. ‘택배 장타’ 비결이 뭘까.
“상·하체를 꼴 때 최대한 꽈요. 활시위를 잡아당기듯 말입니다. 그런 다음 하체가 먼저 확실히 돌아주면(시위를 놓으면) 나머지 다운스윙은 자동으로 되는 것 같습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헤드스피드가 확 빨라지더라고요.”
공을 똑바로 날리려면 무엇보다 스윙 궤도가 일관돼야 한다. 궤도를 잘 잡으려면 왼팔꿈치는 쭉 펴고, 오른팔꿈치는 느슨하게 살짝 늘어뜨리는 게 좋다고 그는 설명했다. 장타뿐만 아니라 어프로치도 능했다. 아버지(전욱휴 프로)가 초등학교 때 전해준 비법. 오른발 뒤꿈치를 드는 둥 마는 둥 지면에서 살짝 떼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 후로 뒤땅과 토핑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연습은 기본이다.
“아빠와 약속한 하루 ‘1000개 룰’을 지키려고 해요. 어떤 샷을 새로 연습하면 무조건 1000번 이상 하자는 거죠.”
하지만 그는 앞으로 연습을 더해야 할지 모른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수업을 듣지 않고 하루 종일 골프만 하는 한국 선수 얘기를 미국 애들도 다 알고 있어요. 자극을 받았는지 점점 죽기살기로 연습하더라고요.”
특히 미국 남자 고교생 중에는 ‘차세대 골프황제’ 조던 스피스급 선수가 바글거린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자존심 깨진 뒤 ‘삭발’ 투혼도
화려한 성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지만 아픔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는 2012년 4월 출전한 제주도지사배 아마추어 대회를 잊지 못한다. 1타 차로 우승컵을 놓친 그는 바로 미용실에 가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이 자만심임을 깨달은 것. 한 달 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다. 4개월 후 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월드챔피언십 우승컵을 보란 듯이 들어올렸다.
후반 들어 날씨가 조금씩 풀리자 그의 샷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전반 후반부터 파 행진을 하던 그는 후반 13번부터 15번까지 세 홀 연속 버디를 쓸어담더니 17번홀(파 3)에선 홀 인원에 가까운 탭인 버디를 뽑아냈다. “아! 이제 퍼팅 감이 좀 오네요. 좀 칠 만하니까 끝나네….”
후반에만 4언더파. 기자는 후반 더블보기 한 개와 보기 5개를 범하며 88타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지난 6월 맞짱골프를 시작한 이래 최악의 스코어다. ‘겨울이고, 그린이 딱딱하게 굳었으니 그만하면 잘한 것’이라고 위로하려 했지만 마음속은 벌판처럼 추웠다. 6개월가량을 허송세월한 것 같은 공허함이다. 한 수 지도를 부탁했다. 그는 주저했다.
“폴로스루랑 피니시도 없고 임팩트 때 헤드스피드가 감속되는 게 좀 그런데요…. 그냥 바꾸지 말고 그렇게 쳐도 아마추어 사이에선 충분히 통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포기하고 골프를 즐기시라’는 말이다. 그 말이 더 가슴을 찔렀다. 천재와의 맞짱은 놀라움으로 시작해 좌절감으로 끝을 맺었다. 다시 ‘갱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 골프, 정말 너는 누구냐?
전영인은 누구
▶출생 : 2000년 5월14일 미국
▶학교 : 서울 은성중학교 3년
▶신체 : 161㎝·65㎏·허벅지 둘레 58㎝
▶골프 입문 : 5세
▶최저타수 : 65타(7언더파)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 : 260야드(238m)
▶자신 있는 샷 : 드라이버샷
▶주요 성적 2015년 세계아마추어 대회 2승(윈드햄챔피언십/핑인비테이셔널), 2014년 미국 주니어 대표 발탁, 2012년 월드챔피언십 우승, 2012년 US걸스주니어챔피언십(18세까지 출전) 최연소 본선 진출, 2009년 월드챔피언십 2위
안산=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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