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물 70% 도로명주소 쓰지만 공공기관·통신사 물량 대부분
"국민들 곧 적응" 입장 고수하다 뒤늦게 TF 꾸려 "모든 방안 검토"
[ 강경민 기자 ] 11일 오전 서울 A구청 민원실. 인적사항을 적는 신청서 주소란에 도로명 주소를 적어야 하느냐는 한 민원인의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어차피 컴퓨터로 바꿀 테니 지번 주소로 적어도 된다”고 말했다. A구청에 따르면 민원실을 방문하는 사람 중 도로명 주소를 기입하는 비율은 10명 중 2명가량에 불과하다. 같은 날 서울역 인근 B우체국. 우편물을 부치는 창구 한쪽에 주소를 찾아볼 수 있는 우편번호부 책자가 비치돼 있었다. 책자엔 도로명 주소가 아닌 옛 지번 주소만 기재돼 있었다.
도로명 주소가 도입된 지 4년이 지났지만 구청과 경찰서, 우체국 등 일선 현장에서 이용률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하고 제도 도입 4년 만에 긴급 개선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용률 70%는 통계 착시”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올 6월부터 지난달까지 전국 우편물의 도로명 주소 평균 사용률은 70%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되기 한 달 전인 2013년 11월 17.7%의 네 배를 넘었다.
하지만 우편물 사용률 기준으로 도로명 주소가 정착됐다는 건 ‘통계 착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우편물을 보내는 일반 국민은 상대적으로 줄었다. 우편물의 대부분이 공공기관이나 통신사 및 금융사에서 일괄적으로 보내는 물량이라는 게 우정사업본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2011년 7월부터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도로명 주소를 쓰도록 한 데 이어 민간 기업에도 새 주소를 활용하도록 했다. 우편물의 도로명 주소 사용률이 70%가 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우편물 사용률을 근거로 국민 10명 중 7명이 새 주소를 쓰는 것은 아니다”며 “실제 이용률은 훨씬 낮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정확한 이용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태 심각성 뒤늦게 파악한 정부
정부가 도로명 주소 도입을 추진한 건 19년 전인 1996년이다. 2007년 새 주소를 도입한다는 내용을 담은 ‘도로명 주소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정부는 전국적으로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 설치 작업에 나섰다. 1996년부터 소요된 도로명 주소 전체 사업 예산 약 4000억원 중 절반이 넘는 예산이 2007년 이후 쓰였다.
도로 이름과 건물 번호로 주소를 부여하는 도로명 주소가 도입되면 주소를 찾기 쉬워 물류비용 감소로 연간 수조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 당초 정 括?설명이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내비게이션 등 정보기술(IT)이 발달하지 않았던 1990년대에나 가능한 얘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그동안 도로명 주소의 장점을 적극 홍보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고수해왔다. 하지만 도로명 주소를 이대로 방치하면 새 주소가 ‘공공기관 전용 주소’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최근 들어 정부 부처 안팎에서 심각하게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존 지번 주소처럼 도로명 주소에 동(洞) 이름을 붙이는 방안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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