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임시직원' 임원의 두 모습] 퇴임임원 "나는 집사" …지하철 타는 것도 '쩔쩔'

입력 2015-12-11 19:19   수정 2015-12-11 19:25

회사 나가면 천양지차

일부 기업, 퇴임 후 2~3년 예우
그나마 사장급 '고참' 에 해당



[ 남윤선 기자 ] 화려하게 직장생활을 한 기업 임원들. 하지만 퇴임하면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다. 회사에 따라선 퇴임 후 2~3년간 예우를 해주기도 한다. 고문이나 자문역, 상담역 등의 타이틀을 통해서다. 이런 직함을 부여받으면 그래도 숨을 돌릴 수 있다. 일정 급여를 받고, 사무실도 사용할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하며 제2의 인생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예우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사장이나 사장을 지냈으면 모를까, 상무를 지내다 퇴임하면 당장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20년 이상 회사 생활을 하고, 3년 이상 임원을 지내다 은퇴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다. 금전적인 문제는 어쩌면 둘째다. 당장 비서와 전용차가 없어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잡무는 비서가 처리해줬다. 이동도 기사 딸린 전용차를 통해서 했다.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 하니, 처음엔 생소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부사장을 지내다 퇴임한 사람은 “지하철을 타려고 갔는데 표 파는 곳도 없고 게이트를 어떻게 통과하는지도 몰라 한참을 헤맸다”고 털어놨다. 공기업 사장을 하다 은퇴한 사람은 “퇴임하자마자 전용차를 거둬가버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웃었다. 인터넷 뱅킹도 퇴직 임원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다. 공인인증서, 일회용 비밀번호(OTP) 생성기 등은 낯설기만 하다.

가장 힘든 것은 ‘시간 활용하기’다. 돌아보면 직장생활 내내 편한 날이 없었다. 정신없이 살았다고 해야 맞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정지됐다.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다. 한 퇴직 임원은 “퇴직 후 몇 개월은 여행도 가고, 못 만났던 사람도 만나느라 바쁘지만 그 이후는 할 일이 없어 멍한 상태에 빠졌다”고 돌아봤다.

물론 금방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자신의 경험을 전수하는 사람도 있다. 최치준 전 삼성전기 사장은 전기공학 관련 전문성을 살려 서울대에서 무료로 강의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가서 자기실현을 하는 사람도 상당하다. 자기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갈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퇴직 임원 사이에서는 “지금은 집사이고 장로도 될 것 같다”는 허탈한 농담이 나돈다. 집사는 ‘집에서 사는 사람’의 준말이고, 장로는 ‘장기간 노는 사람’을 뜻한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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