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970년 소규모 점포 보호 '로와이에법' 제정
골목상권 되레 위축 '역효과'…규제완화로 선회
경쟁 통해 소매업 기업가 정신 돋우는 유통정책 필요
한종길 <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 >
대법원은 지난달 19일 대형유통업체 6개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시간 제한 등에 대한 처분 취소소송에서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과 2심에서 서로 다른 판결이 있었던 만큼 대법원 판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컸다. 대법원은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크고 중소업자를 보호할 필요도 큰 반면 대형마트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 등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정당화했다. 대법원은 규제 시기가 늦춰져 일단 왜곡되면 원상회복이 어려울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중소사업자들이 중대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이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전통시장이 활성화되고, 중소점포를 보호해 유통생태계가 다양화된다는 지자체의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대형마트 규제를 찬성하는 측에선 프랑스 등 선진국은 대형소매점을 출점단계부터 엄격하게 규제해 기존 상권을 보호했다며 한국도 유통시장의 불균형 해소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대형마트 출점규제는 1970년 이전, 영업시간 제한은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프랑스는 대형마트 규제로 중소소매점이 활성화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프랑스의 대형마트 출점규제는 실패로 끝났다. 대형마트 규제론자들은 자신들이 닮고 싶어하는 유통산업 규제의 선진국인 프랑스 정부가 소비자 요구를 받아들여 올해부터 대형점포의 영업시간 제한을 완화하고 10여년 전부터 규제 대상 점포면적을 상향조정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대형마트 출점규제 완화환 프랑스
프랑스 정부는 1973년 기업형 슈퍼마켓과 하이퍼마켓 같은 대형점포가 급성장하자 소규모 점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로와이에법을 제정했다. 매장면적이 3000㎡ 이상인 점포를 열 때는 정부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하고 출점가능지역도 제한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형점포 출점이 계속되자 프랑스 정부는 1996년 허가가 필요한 최소 매장면적을 300㎡로 하향조정하는 라파랭법을 제정했다. 그러자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매장면적 300㎡ 이하의 초소형할인점 하드디스카운트스토어(HDS)가 독일계 소매업체 체인점을 중심으로 급증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한편 2003년 7월, 프랑스에 진출한 독일계 유통업체 ALDI는 프랑스 규제의 불합리함을 유럽연합(EU)위원회에 제소했다. EU는 프랑스의 점포 출 ?허가과정이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제적 영향조사를 요구한다며 특히 출점 시 허가가 필요한 매장면적을 1000㎡에서 300㎡로 낮춘 것에 대해 2005년 7월 이후 시정하도록 권고했다. 라파랭법은 유럽공동체 설립조약 제43조 및 49조에 의해 존중과 준수 의무가 있는 사업소 설립의 자유 및 서비스 제공의 자유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프랑스는 출점규제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선택한 대형점포의 매출비중 증가, 규제 기준면적 이하의 초소형 점포 증가로 자국 중소업자의 위축이 계속되고 국제기구로부터 개정 요구가 이어지자 2008년 출점 시 허가가 필요한 매장면적을 인구 2만명이 넘는 지자체에선 1000㎡로 상향조정했다.
소비자 후생, 일자리 창출 고려
프랑스가 소매업 출점 제한 규제를 도입했지만 소규모 점포 매출은 거꾸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부터 2013년까지 프랑스 식료품 점포의 규모별 매출 비중 변화를 보면 소규모 점포인 전문식료품점의 매출 비중은 1980년 27.4%에서 2013년 17.8%로 크게 낮아졌다. 반면 대형점포인 하이퍼마켓의 매출 비중은 1980년 14.3%에서 2013년 36.5%로 커져 시장 매출의 3분의 1을 점유했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매출 비중도 1980년 16.8%에서 2013년 28.8%로 확대됐다.
프랑스 정부는 대형소매점포에 대한 출점규제가 소매유통업의 위축을 초래하고 소비자 선택권과 편의성을 제한한다는 평가가 제기되면서 규제완화로 정책방향을 선회했다고 할 수 있다. 또 대형점포 출점규제 실패는 선거로 드러난 국민의 정치적 행동과 소비자의 점포선택 행동에 괴리가 있음을 말해준다.
프랑스는 대형점포 출점규제 외에도 1906년부터 종교생활과 종업원의 과잉노동 금지 등을 이유로 일요일 영업을 금지해왔다. 하지만 올 2월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일요일 영업 제한 완화를 공포했고 5월 법안이 통과됐다. 프랑스 정부는 국회에서 부결될 것을 우려해 헌법상 권한을 이용, 하원 표결 없이 해당 법안을 발표하는 등 규제완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결과 파리, 니스 등 주요관광지의 백화점과 상점에서 일요일 영업과 야간 영업이 허용됐다. 일요일에 문을 닫는 프랑스를 피해 영국으로 쇼핑 장소를 옮기는 외국인 관광객을 보면서 무작정 일요일과 야간에 영업을 규제하는 것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란 긴급한 정책목표 달성을 저해한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 소매업 영업시간 규제완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소매업출점규제와 일요일 영업금지 완화는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원한다면 신업태의 등장과 성장을 막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규제 일변도의 소매유통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과 연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면서 한계상황의 중소유통업자가 폐업할 때는 실업급여를 지원하고 유사 분야로의 전업을 지원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즉, 대형마트를 무조건적으로 규제하기보다 소비자 후생을 훼손시키지 않고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 중소소매유통업자의 생활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프랑스의 출점규제는 EU로부터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을 받아 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유통규제가 신업태의 등장을 막고 소매경영인의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는 것은 향후 예상되는 동아시아 경제 통합이라는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중국, 일본의 소매점과 경쟁 가능한 토종업 섟?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글로벌 경쟁 상황 감안해야
대형업체 진입 및 영업규제를 통한 골목상권 보호보다 서비스 제공의 자유,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폭넓은 관점의 유통정책이 필요하다. 국경없는 소비를 촉진하는 온라인 소매업의 발전은 블랙프라이데이나 광군제 행사에서 증명되고 있다. 국내에 오프라인 점포기반을 두지 않아도 외국 유통업체의 국내 소비시장 진출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소비자는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하지 전통시장으로 가지 않는다.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소매업태의 출현을 거부하는 유통규제정책은 그만둬야 한다.
한종길 <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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