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칼럼] 사용후핵연료 처리, 핀란드에서 배워라

입력 2015-12-14 17:50  

"2020년까지 정해야할 처리장 부지
미래 에너지구성에 초점두고 논의
대립 아닌 합의 메커니즘 확립해야"

목진휴 < 국민대 교수·정책학 >



한국은 2016년에 원자력 도입 60주년을 맞는다. 한국은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1호기의 상업운전 이후 원전에 임시 저장해온 사용후핵연료 처리란 커다란 과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 6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2020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부지를 선정해야 하며, 늦어도 2050년에는 이 부지를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5년 후면 2020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문제의 해법은 ‘합의의 거버넌스’에서 찾을 수 있다. 1991년 넬슨 만델라의 석방 이후 갈등에 휩싸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문제를 푼 해법인 ‘몽플뢰르 콘퍼런스(Mont Fleur Conference)’가 대표적인 사례다. 4년여의 협의를 통한 합의는 20여개의 극단적인 갈등주체들이 두 가지 대전제를 통해 사회적 목표를 찾음으로써 시작됐다. ‘갈등과 합의’ ‘과거와 미래’라는 이분법적 전제로부터 ‘합의와 미래’라는 공동의 목표를 도출해 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나리오 싱킹(scenario thinking)’은 남아공을 공존의 오늘로 이끌었고 넬슨 만델라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이끌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 갈등의 대표적인 정책분야인 원자력, 특히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분야에 이런 합의의 거버넌스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찬핵 대 반핵’이라는 구도를 넘어 앞으로 에너지 구성이 어떻게 돼야 하는가로 논의의 틀을 갖춰야 한다. 고리1호기 가동 이후 한국 경제의 동력이 돼온 원자력을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신기후체제의 저탄소 에너지믹스라는 틀 속에서 봐야 한다. 다음으로 ‘찬핵 대 반핵’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넘어서 ‘합의와 미래’라는 대전제를 향한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할 것이다.

원자력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합의와 미래’의 시나리오 싱킹 모델은 지난해 9월 한국 사회의 비정부기구(NGO)들과 언론계를 비롯한 차세대 리더 그룹이 ‘갈등을 넘어서는 합의’라는 대전제에 동의하면서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얼마 전 정부 예산심의에서 이 합의 프로그램은 ‘국민소통’ 항목 신설이라는 새로운 선례로 여야 합의를 끌어냈다고 한다.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과 관련해서는 핀란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12일 핀란드에서는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분장 건설 인허가가 승인됐다. 내년 말 처분장 건설을 시작해 2023년 정식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처분장 건설이 가능하게 된 것은 지하연구소를 갖추고 연구 결과와 경험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주민의견을 적극 반영한 기본계획에 따라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민주적 정책결정 메커니즘을 확립해나가는 정부와 이해당사자들의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30여년 갈등으로 점철돼온 사용후핵연료 처리문제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정부는 핀란드 사례를 배워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풀기 위한 법적, 제도적 준비와 함께 안전, 투명성을 원칙으로 한 장기적인 계획 수립에 나서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원자력계를 비롯한 과학기술계와 학계, 언론계가 함께 숙의하고 합의를 지향하는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 나아가 중앙정부와 원전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대표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합의 거버넌스는 원전산업뿐만 아니라 갈등으로 점철돼온 국책사업의 빗장을 푸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목진휴 < 국민대 교수·정책학 mok@kookmi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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