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교토(京都)

입력 2015-12-16 17:34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베이징이 중국 대륙의 중심이 된 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긴 역사로 보면 중국의 고도(古都)는 역시 시안(西安)이다. 주(周) 진(秦) 한(漢) 당(唐) 등 13개 고대 왕조가 도읍을 삼은 곳이다. 중국에 고도 시안이 있다면 일본에는 교토(京都)가 있다. 일본의 경주라고나 할까.

분지인 교토 일대는 한반도와 대륙에서 건너간 이주민에 의해 일찍부터 도시가 개발됐다고 한다. 토지의 개척과 관개로 농업생산성이 높아졌고, 양잠과 견직 산업도 발달했다. 일본사에서 고대 말기에 해당하는 ‘헤이안시대(794~1185)’를 연 유서 깊은 지역이 바로 교토다. 유적만 봐도 옛 교토의 위상은 짐작된다. 왕궁도 그렇지만 금각사와 은각사, 청수사(기요미즈테라)는 지금도 일본의 이미지를 구성한다. 1000년의 역사를 지닌 절과 신사가 2000여개나 남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학술과 문화, 관광의 도시가 교토다. 하지만 이 도시를 더 유명하게 하는 것은 단연 교토 기업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 경영자의 진두지휘로 수십년 이상 한 분야에서 기술개발로 승부를 거는 독보적인 회사들이 교토 일대에 적지 않다. 교토식 경영이란 경영학 교과서가 나왔을 정도로 일본에서도 한 수 접沮獵? 철저한 기술 기반 기업들이다. 올해 국제 산업계의 최대 빅 뉴스로 꼽힐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도 교토 기업이 아니었으면 그냥 묻혔을지 모른다. 배출가스의 성분을 처음 측정한 웨스트버지니아대 연구소와 이를 토대로 조작사실을 밝혀낸 미국 환경보호국의 계측시스템이 바로 교토 기업 호리바제작소 제품이었다.

이곳에는 40개에 달하는 대학에다 연구소도 많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를 물리학에서 배출한 교토대는 총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키워냈다. 장인이 대접받고 기술이 우대되는 분위기는 교토 기업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호리바가 그렇듯, 고집스런 이들의 기술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PC용 HDD모터(일본전산), 아이폰6S를 구동시키는 적층세라믹콘덴서(무라타제작소), 세라믹 패키지(교세라), 트랜지스터(롬) 등 세계 최대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기업도 많다.

아베노믹스의 세 화살로 일본기업들이 잘나간다지만 교토 기업은 그중에서도 특히 잘나간다. 사상 최대 실적이 잇따른다. 도쿄증시에 상장된 교토 기업 38개 중 11개사의 주가가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오랜 고도에서 첨단 기술기업들이 빛난다는 것, 그게 저력이요 국력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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