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경제활동의 성공·실패는 개인 책임…'사회 탓' 좌파 주장은 두뇌과학을 오독(誤讀)한 것

입력 2015-12-18 17:51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42> 책임원칙, 자유시장의 핵심가치

"개인 행동·결과 책임 물을 수 없다"
자유의지 부정한 두뇌과학, 경제적 온정주의 정당화 근거돼

운명 스스로 책임진다는 믿음이 투자·생산·소비 신중하게 선택
빈곤·실업 극복하는 원동력

탈규제·탈관료화로 간섭 최소화…책임정신 키워야 경제번영 이뤄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자유시장의 도덕적 핵심가치는 책임원칙이다. 개인이 행동을 통해 자신 또는 타인의 재산, 자유, 인격 등에 끼친 피해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는 의미가 없고 자유 없는 책임도 있을 수 없다. 자유와 책임은 서로를 보완하는 가치다. 자유롭고 책임감이 투철한 인간을 육성하는 걸 자유사회의 교육 목표로 여기는 것도 자유와 책임 간 상보(相補)관계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계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패러다임이 있다. 오늘날 최첨단 과학으로서 젊은 학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두뇌과학이다. 두뇌과학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자유의지의 존재 문제’다. 그것이 개인적 책임의 논거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과거의 경험이나 외부 환경으로부터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자유의지가 존재하는데, 이 자유의지가 투자, 생산, 소비 같은 경제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에 개인은 자신의 이런 경제적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유의지에서 결정된 행동이야말로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믿는 게 책임론이다.

그런데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한 두뇌과학의 주장이 흥미롭다. 최첨단 장비를 통해 두뇌 속을 구석구석 탐색했지만 ‘물리화학적 인과율’에 따라 작동하는 신경연결망만 있을 뿐, 이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유의지 또는 정신이란 어디에도 없다고 두뇌과학은 목소리를 높인다. 인간행동을 결정하는 건 자유의지가 아니라 인과법칙에 따르는 신경구조이기 때문에 행동과 행동의 결과에 대해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죄가 있을 수도 없다는 게 두뇌과학의 인식이다.

약삭빠른 좌파 지식인들이 이런 논리를 무심히 지나칠 리 없다. 이들은 자유와 책임은 성립할 수 없고 자유시장은 그 어떤 철학적 정당성도 없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실패는 물론 죄를 저질러도 자신의 마음 탓이 아니기 때문에 가벼운 처벌이나 정신치료의 사법(司法)적 온정주의가 마땅하다는 것이다.

두뇌과학의 이런 주장은 자유사회의 헌정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 주장의 타당성을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건 신경연결망의 바깥에는 그 어떤 정신 또는 의지도 없다는 두뇌과학의 인식이다. 그런 인식은 자유주의의 거성 하이에크가 보여주듯이 전적으로 옳다. 하이에크는 21세 때 집필한, 오늘날 두뇌과학의 효시로 알려진 저서 《감각적 질서》에서 “자유의지 또는 정신이라는 독립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이란 물리화학적 인과율에 따르는 두뇌(신경)작용의 산물이고 인간행동도 마찬가지로 신경작용의 결과라는 게 하이에크의 독창적인 인식이었다.

신경망에는 본능적 후천적 경험이 축적, 저장돼 있다. 그 경험에 비춰 환경의 신호 자극이 해석·분류되고 정신현상과 인간행동이 결정된다. 물리적인 것을 재화, 자본 등 정신적인 것으로 인지하는 게 자연의 인과법칙에 따르는 신경구조다. 정신현상은 신경의 물리적 과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정신은 독립적 실체가 없고 그래서 사실상 정신과 육체는 하나다. 그럼에도 정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건 정신현상을 물리화학적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해서 말하는 게 편리한 것이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자유와 책임의 상보성이 허물어진다는 두뇌과학의 인식은 옳은가. 결코 아니다. 두뇌과학의 자유개념은 외부 환경이나 경험으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의 자유의지를 말하는데 우선 이것부터 틀렸다. 그런 자유개념은 개인의 내면적 심리를 기술하기 때문에 교환관계처럼 인간관계로 이뤄지는 시장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시장질서의 진정한 자유개념은 강매, 폭력, 허위광고, 경쟁방해 등 부당한 행동을 금지하는 제도적 틀 내에서 행동할 자유다. 금지된 행위는 타인들의 생명, 인격, 재산을 손상하기 때문에 (범)죄다. 그런 행위가 없는 자유로운 상황에서 행한 경제활동의 실패와 성공은 냅?스스로가 책임진다.

두뇌과학의 책임개념도 틀렸다. 이는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음에도 이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는 걸 뜻하는 심리적, 개인적 차원의 개념이다. 진정한 책임개념은 자신의 행동으로 타인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도덕은 인간관계를 안내하는 사회적 규칙이다.

사회적 규약으로서 개인적 책임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가. 그 이유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을 칭찬·비난하는 것도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책임원칙의 존재 이유는 자유의지가 아니라 교육적 기능이다. 책임이 뒤따르니까 투자, 생산, 소비 등 경제활동을 신중하게 선택하거나 타인에게 끼친 재산·신체상 피해에 대한 엄격한 책임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기대다. 따라서 범죄를 개인 자신이 아니라 빈곤, 실업 등 사회병리 탓이라고 보는 온정주의 입장에서 범법자를 형무소 대신에 병원으로 보내거나 죄를 실수로 가볍게 보는 사회는 범법자를 재생산할 뿐이고 그래서 지속적 존립이 가능하지 않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람은 투자, 생산, 소비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자기 일에 노력과 열정을 쏟는다. 아마추어를 프로로 길들이는 게 책임 정신이라는 말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만이 빈곤과 실업의 극복, 보편적 번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가난과 실패를 환경 탓으로 돌리는 사람에게는 성공 기회도 없고, 기껏해야 정치를 이용해 타인들이 번 돈을 뜯어먹는 무능하고 비생산적 활동만 있을 뿐이다.

책임정신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통한 기업 활동의 범죄화는 금물이다. 개인과 기업이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탈규제·탈관료화가 필요하다. 자유가 없으면 책임윤리가 기능할 수 없고, 책임정신이 없으면 온정적 정부 개입으로 자유는 소멸된다. 그래서 자유와 책임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자유헌법의 기본 가치인 것이다. 첩첩이 쌓인 정부 간섭을 걷어내고 폭력, 사기, 강압 등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범법자를 엄격히 다스리는 게 스스로 책임지는 성숙한 시민을 위해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후천적 학습의 결과 ‘책임원칙’
소유안정·계약자유·약속이행
경제적 법질서 진화 이뤄내

사람들은 인간행동의 인과적 결정성 때문에 책임원칙에 용이하게 반응할 수 있다.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변동에 매우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인간행동의 인과성 때문이라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아 행동과 인격을 바꾸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유의지란 우리의 행동이 과거의 어떤 경험이나 기억에도 좌우되지 않으며 과거의 어떤 영향에 대해서도 반응하지 않는 행동이다. 그래서 ‘자유의지자(free willer)’는 타인의 비난, 칭찬, 보상, 처벌 등 어떤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는 질서가 형성되고 유지될 수 없다.

책임 부여에 의해 행동변동을 기대할 수 없으면 책임원칙의 사회적 기능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의 세상에는 가격이 행동유인물로서 작동하는 시장질서도 생겨날 수 없다. 그러나 인간행동은 인과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상과 처벌, 칭찬과 비난 등에 용이하게 반응할 수 있고 그래서 시장경제의 작동도 가능하다는 걸 주지할 필요가 있다.

책임원칙의 원천은 무엇인가. 책임관행은 본능의 산물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한다는 의미에서 문화적 진화의 선물이다. 현생 인류의 심리·신경구조가 형성되던 석기시대에 등장한 원초적 본능은 책임지기를 싫어한다.

오늘날 문명화된 사회의 경제적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소유안정, 계약자유, 약속이행 등과 관련된 법질서의 성공적인 진화의 상당 부분은 책임원칙이 등장함으로써 생성된 진화적 산물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진화는 인간에게 접근 가능한 기회와 선택 대안들의 범위를 확대했지만 자유의지를 선물하지는 않았다. 자유의지는 진화론적 설명의 정당성도 없다.

그래서 자유의지는 현실적 바탕이 없는 개념이다. 이런 허구적인 것을 가지고 책임과 같은 중요한 도덕적 가치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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