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게 가장 섹시한 거"…뚱녀와 트레이너의 헬스힐링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

입력 2015-12-19 03:50  

미디어 & 콘텐츠

촌철살인 대사들 '수두룩'
깊은 상처 하나씩 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묘약'



예상했던 대로 ‘기승전(이야기 전개와 절정까지) 소지섭’이다. 소지섭을 위한, 소지섭에 의한, 소지섭의 드라마다. 2억원짜리 뚱녀 분장을 한 신민아는 “더 예뻐 보인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적어도 2회까지는 그랬다. 개연성 없는 전개와 툭툭 끊어지는 화면을 계속 봐야 하는지 회의가 들 때쯤 낯간지러운 대사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15년간 사귄 전 남친의 현 여친이 “사랑받거나, 사랑받지 못하거나…”라는 말로 뚱녀 신민아의 처지를 비꼬자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여야지”라고 당차게 일침을 던지는 장면은 대표적인 명장면. ‘섹시가 쳐발쳐발(화장이 두껍다는 속말로 강력하다는 의미)’한 소지섭과 ‘사랑하는 데 거침없는’ 신민아의 화학작용은 촌철살인 대사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마이너 외모의 여성이 메이저급으로 변신해 사랑을 이룬다는 뻔한 스토리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달랐다.

강주은(신민아)은 ‘대구 비너스’로 통하는 미스코리아급 외모임에도 소신 있는 여학생이었다. 미모를 갖춘 소시민 주인공들이 캔디나 신데렐라를 꿈꾸는 것과 달리 강주은의 롤모델은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주인공인 오스칼이다. 남장 여성인 명문 귀족으로 프랑스 대혁명 직전 마리 앙투아네트의 근위대장이었으나 혁명에 동참해 약자들의 편에 선 정의의 아이콘이다. 소신껏 재수해 법대를 거쳐 사시에 합격했지만 ‘대구 비너스’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얼꽝뚱녀 변호사’로 사는 강주은은 혹독한 부조리의 숲에서 오스칼처럼 정의로움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적의 헬스 트레이너 존킴(소지섭)은 할리우드 유명인들을 몸꽝에서 여왕으로 변신시킨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로 한국 최대 의료법인 후계자다. 어머니를 일찍 사고로 잃고 골육종을 앓아 수많은 수술과 재활로 뼈를 깎는 고통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우연히 강주은과 인연이 돼 자의반 타의반 그녀의 건강한 다이어트를 책임지게 된다.

개연성 없는 초반의 인물관계가 밝혀지고 본격적으로 강주은의 헬스 트레이너가 된 존킴은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각자의 허물과 아픔을 공유한다. 지고지순하지만 거침없는 강주은과 ‘츤데레(겉으로 무뚝뚝하나 속정이 깊은 사람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 존킴은 서로를 위기에서 구하고 아픔을 보듬는다.

금수저를 물긴 했지만 인생의 단맛을 모르고 철저한 자기관리 속에서 살아온 존킴은 따뜻한 통통녀 강주은의 재기발랄한 말과 행동으로 다시 태어난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깊은 상처 하나씩 품고 사는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묘약 같은 장면들이다.

첫 장편드라마에 도전하는 신예 작가의 좌충우돌 구성에서 찾아낸 뜻밖의 진주인 ‘보완적 교류 신’들은 흔히 말하는 애정행각이나 애무보다 고차원적이다. 헬스힐링 드라마답게 건전해서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과 재연해보기 안성맞춤이다. 막장 전개가 없다 보니 시청률은 답보 상태지만 존킴으로 분한 소지섭의 “건강한 게 가장 섹시한 거”라고 부르짖는 츤데레 트레이닝 가이드와 거침 없는 신민아의 ‘사이다 어록’은 명불허전이다. 연말연시 마음이 추운 현대인들은 챙겨볼 만하다.

이주영 < 방송 칼럼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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