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란드’를 아시는지?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부, 이곳과 인접한 러시아의 서북부 등 유럽 대륙 최북단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유럽의 청정지대인 이곳은 체코의 보헤미아,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처럼 개성 만점의 힐링 휴양지다. 무엇보다 광활하고 넓다. 한반도의 두 배만큼인 40만㎢에 달하지만 거주 인구는 많지 않다.
끝없는 침엽수림과 거울 같은 호수, 강들이 이어진다. 그대로 마셔도 되는 1급수인 설원의 강물은 한겨울 눈 속에서도 얼지 않은 채 힘차게 흐른다. 생동감과 박력이 넘친다. 하늘로 곧게 쭉쭉 치솟은 눈 덮인 겨울나무들은 북구의 미녀들을 닮았다. 늘씬하고 하얀 자태가 꼭 그대로다. 숲 사이로 가늘게 펼쳐진 도로는 수시로 순록들이 점령하곤 한다.
◆유럽의 변방에서 휴양지로 변모
라플란드를 방문하지 않고는 북극권의 추위도, 지구라는 푸른 별의 청정함도 얘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곳의 오로라는 지구의 신비를 더해준다.
순록을 키우고 사냥과 어업으로 살아온 ‘라프족(族)의 땅’이래서 라플란드였다. 라프족 외에도 눈덮인 숲 測遊?소수 민족의 터전이었으나 정확한 인구통계도 없다. 유럽에 속한다지만 그만큼 아직은 오지다.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으로, 극한 지대로만 여겨졌던 라플란드가 현대인의 휴양지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핀란드 영역 내 로바니에미의 산타클로스 마을도 그중의 한 곳이다. 스웨덴에 속하는 라포니안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핀란드가 관광상품으로 북위 65도 이북의 북부지역 개발과 홍보에 매우 적극적이다. 여름에는 백야현상이 이색 체험이고, 겨울은 눈과 얼음으로 덮인 긴긴밤이 매력이다. 오로라를 기대하고, 얼음호텔을 경험하는 곳이다. 무수한 국립공원의 트레킹 코스는 굽이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한겨울에 급류를 타고 떠가는 플로팅 체험도 차갑지만 별미다. 허스키가 끄는 썰매체험 또한 좋다.
61년된 스키 명소 루카리조트 슬로프서 질주를
전통 있지만 현대화된 리조트
500km 컨트리 스키 트랙 볼거리
오울란카 트레킹·플로팅 체험 인기
노키아의 전성시대는 사실 너무 짧았다.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지만 세상을 바꾼 스마트폰 혁명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노키아가 무너지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가자 핀란드 경제도 북극의 한파에 노출되고 말았다. 기자를 안내한 핀란드관광협회의 키모 라우티아넨 세일즈부장도 그점을 아쉬워했다. “핀란드 경제? 상당히 안 좋다. 노키아가 없지 않나”라고 했다. 핀란드 국적기 핀에어의 아시아 진출 전략을 설명해줬던 홍보담당 임원 아르야 수오미넨 씨도 노키아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이다.
노키아 임직원들이 새 일자리를 찾아 나섰듯, 핀란드는 요즘 새 전략을 모색 중이다. 키워드는 디자인과 관광이다. 수도 헬싱키의 구도심이 달라졌다. 15년 만에 다시 방문한 기자의 눈에 헬싱키 외관은 이전 그대로였다. 오후 4시도 안 돼서 어둑어둑해지는 초겨울 헬싱키의 외관은 북유럽의 다른 도시처럼 싸늘하고 차분했다. 하지만 ‘디자인!’을 외친 뒤 도심에는 디자인을 내건 사업장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말이 사업장, 사업자이지 작은 가게들이다. 액세서리와 장식품, 의류·가방 등 패션상품, 목재와 가죽제품 등을 파는 200개 이상의 가게들이 조합을 구성하고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려 머리를 짜내고 있다. 맛집도 빠질 수 없다. 순록 스테이크, 순록 수프, 순록 간요리…. 헬싱키 구도심의 옛 부둣가 창고를 리모델링한 레스토랑 노카(Nokka)도 그런 곳이었다. 겉보기와 딴판인 고급스러운 분위기에다 순록 스테이크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 유럽에서 스키 시즌이 가장 긴 곳
헬싱키는 덩달아 둘러보는 곳일 뿐이다. 적어도 라플란드로 힐링 투어를 나선 방문객에겐 그렇다. 감탄사를 아껴둬야 한다. 라플란드로 통하는 관문이 인구 1만5000여명의 도시 쿠사모다. 북위 66도의 이 휴양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헬싱키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야 한다. 1시간15분간 840㎞를 날아가면 제대로 북극권에 들어선다. 온통 새하얀 설국(雪國)으로 들어서니 작은 공항까지도 하얗다.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눈 속에 묻혀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쿠사모 외곽의 스키 명소인 ‘루카리조트’는 처음 세워진 게 61년 전이지만 모든 시설이 현대화돼 있다. 유럽에서 스키 시즌이 가장 긴 곳이다. 고급, 중급, 초급의 스키 슬로프가 모두 29개나 된다. 총 500㎞에 달하는 컨트리 스키 트랙에서 느긋하게 걷기를 즐기는 연인이나 가족 단위 스키어들도 쉽게 볼수 있다. ‘노르딕 스키 월드컵’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 같은 국제 경기도 여기서 열린다. 루카 리조트에는 4개의 호텔과 28개의 다양한 식당들이 있다. 한국의 콘도와 내부 구조가 비슷한 콘도식 호텔은 깨끗하고 고급스럽다. 간이 사우나 시설까지 잘 갖춰져 있는 게 역시 핀란드다. 곳곳에 붙은 ‘66.09.95’라는 표지가 마치 문장(紋章) 같다. 북위 66도9분95초라는 위치를 강조한 것이다. 동쪽으로 자동차길로 20~30분만 가면 러시아 국경이다.
◆ 오울란카 국립공원 트레킹도 매력적
스키 외에도 다양한 재밋거리가 있다. 가솔린 엔진으로 가동되는 스노모바일로는 눈 속을 질주할 수 있다. 스노슈는 테니스 라켓 같은 것을 신발 위에 덧대 신고 쌓인 눈 위로 산책하는 놀이다. 눈이 많은 강원도 산골에서 사용했다는 설피와 비슷하지만 현대적 공산품이다. 이걸 신고 눈덮인 숲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도 이색적이다. 특히 야간에 스키 슬로프 정상 부근으로 올라가서 차디찬 북극 바람에 맞선 채 바라보는 루카리조 ?단지는 그야말로 몽환적이다. 사방이 눈 천지인데도 슬로프에는 계속 제설기가 가동되면서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북극쪽 바람이 거세어질수록 점점이 흩어진 리조트의 불빛들은 더욱 따스해진다.
눈 속의 침엽수림 사이로 무심히 흐르는 맑은 강물과 호숫가를 하염없이 걷고만 싶다면 오울란카 국립공원의 트레킹 코스가 강추다. 루카리조트에서 자동차로 10여분이면 코스에 닫는다. 원시의 숲으로 들어가는 관문에서부터 중간 중간에 설치된 안내표지도 훌륭하다. 가벼운 점심을 곁들인 2~3시간 트레킹에 현지 전문 안내자를 붙이자면 60~70유로 정도가 들지만 풍광만큼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미리 잘 주문하면 핀란드 특유의 연어스튜도 맛볼 수 있다. 깊은 숲 속의 낮지만 거센 폭포수를 이용한 밀리코스키 급류의 물레방아에서 잠시 쉬면서 다소 거친 핀란드 빵과 함께 먹는 연어스튜와 한 잔의 커피는 일상의 음식이 아니다. 80㎞에 달하는 오울란카의 좁은 길은 핀란드에서도 손꼽히는 트레킹 코스다.
트레킹을 마치고 오후에는 수많은 호수와 호수 사이의 숲 속을 빠르게 거쳐가는 강물에 풍덩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는 독특한 체험도 가능하다. 트레킹 때 빌려 입는 방한복 위에 방수복을 또 입고 하는 체험이다. 방한 신발도 방수용으로 바꿔 신고 얼굴과 두 손만 내놓은 채 강물로 들어간다. 가슴에 구명조끼까지 입으니
이 둥둥 뜰 수밖에 없다. 그렇게 500~800m 정도를 떠내려가는데, 이곳에도 숙련된 안전요원이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강물의 물결을 타는 순간 곧장 둥둥 떠내려가므로 방향 잡기가 만만찮다. 두 손을 열심히 저어야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한다. 손이 시린 것쯤은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대중 목욕탕 냉탕이 17~22도 정도이니 북극해로 내달리는 눈 속의 강물이 얼마나 차가우랴. 도착 지점에 제대로 닫기만 하면 친절하게도 작은 오두막에 지펴둔 장작불에 곱은 손을 풀 수 있다.
장작으로 7시간 가열하는 전통 방식 사우나…눈에 구르며 땀 식히기도
인구 550만명에 사우나 100만개
요가 사우나 등 종류도 다양
지방질 없는 순록스테이크 별미
◆ 전통 방식의 사우나 성행하는 핀란드
핀란드는 역시 사우나의 나라다. 인구 550만명에 사우나가 100만개를 넘는다고 한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은 차가운 호숫가나 강가에 세워진 오두막이다. 사방에 널린 목재로 미리 다듬어둔 장작을 땔감으로 5~7시간가량 외벽의 난로를 땐다. 돌을 가열하는 방식이다. 자작나무 잎이 남아 있는 잔가지를 묶어둔 다발은 이른 가을철에 준비해두는 사전 준비물이다. 사우나와 얼음물을 몇 차례 오가며 땀을 쏟아내는 게 핀란드식 건강유지법이요, 미용법이다. 그래서 꽁꽁 얼어붙은 호숫가에도 사우나 앞은 얼지 않도록 관리해 둔다. 찬물에 들어가는 대신 눈 위에 구르며 땀을 닦기도 하는데 이방인에겐 이게 더 고난도 사우나법이다.
쿠사모 인근에도 사우나는 지천이다. 대개 여름엔 통나무 오두막 별장이다. 최근에는 응용된 사우나도 많아졌다. 전통 방식의 ‘스모크 사우나’ 외에 두 가지 방식을 더 체험해 봤다. 사우나와 음악을 접목시킨 ‘사운드 테라피’도 그랬다. 몇 ?기구로 자연의 소리를 내면서 명상치유도 하고 사우나도 즐긴다. 요가 사우나도 이색적이었다. 젊은 여성 요가 강사의 코치대로 따르다 보면 몸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해진다.
쿠사모 일대의 각종 리조트 사업은 ‘패밀리 비즈니스’인 경우가 많다. 인구밀도가 낮고 도시화가 안 된 지역적 특색 때문이기 하겠지만 전통적 삶과도 무관치 않다. 근사한 식당과 숙박시설이 그렇고, 레포츠 사업도 그렇다. 순록 목장도, 근사한 사우나들도 그런 모델이었다. 대가족의 일터이자 생활공간이었던 것이다. 노키아가 무너진 핀란드 경제의 팍팍함이 배어났다. 한때 순록 목장에서 산타체험 공간으로 재탄생한 붉은 목조 건물의 ‘포조란 피르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장 설립자의 5세손인 노부부가 산타 복장으로 손님을 받고 그의 40대 아들 내외가 주방을 맡았다. 저녁식사와 함께 3시간 정도의 산타놀이에 최대 50명이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라플란드 음식의 기본은 순록이다. 양고기 분위기가 나는 순록 스테이크의 특징은 지방질이 거의 없다는 점과 순록 먹이에 있다는 설명이다. 자연 상태의 순록이 북구의 여러 종류 베리와 버섯, 이끼류 등 100여종의 야생 식물을 섭취해 그 육질도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식 곰탕을 연상시키는 순록뼈 수프도 있다.
민물생선에 비린 냄새가 없는 것도 요리법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 그대로 식수로 쓴다는 맑은 호수와 강에서 자란 생선들이었다. 빙어 같은 작은 생선튀김을 비롯해 구워내는 생선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짧지만 라플란드의 ㈇㏊?좋다. 기온이 20~22도 정도인 짧은 여름에는 숲이 푸르다. 낚씨와 트레킹, 오두막의 게으름과 명상으로 백야를 지내는 게 재미라고 한다.
헬싱키·쿠사모=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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