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심기 특파원) “물은 절대 힘을 쓰지 않지만 끊임이 없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힘을 발휘할 때는 모든 것을 쓸어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3년만에 국내 언론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유력한 차기대권주자로 여야 구분없이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반 총장의 정치적 행보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반 총장은 22일(현지시간) 저녁 뉴욕 맨해튼의 유엔대표부 대사 관저에서 열린 특파원단 송년만찬에 부인 유순택 여사(사진)와 ‘깜짝’ 등장했다. 반 총장이 특파원단 모임에 모습을 보인 건 3년만이다. 반 총장은 취임 후 유엔대표부 송년모임에 들려 한국 언론과 한 해를 정리하는 비공식 간담회를 갖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하지만 최근 2년간은 (차기 대권주자 등) 정치적 이슈 등과 맞물리면서 일체 국내 언론과의 기자간담회나 인터뷰를 자제해왔다. 이번에 3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주빈이 오준 유엔 대표부대사에서 반 총장으로 바뀌면서 이날 모임의 성격은 3년만에 열린 반 총장의 공식 기자간담회로 바뀌었다. 반 총장은 이날 최고의 덕목은 물처럼 행동하는 것이라는 뜻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자신의 신념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 酉“?자신이 직접 쓴 휘호를 전달하기도 했다.
반 총장은 “사람들은 물을 가장 약하고 힘없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물에 당할 것이 없다. 제일 강해 보이는 불은 물로 끄고, 나무와 쇠도 물을 당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물은 절대 힘을 쓰지 않지만 끊임이 없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 번 힘을 발휘할 때는 모든 것을 쓸어낸다”며 강조했다. 반 총장은 이어 “상선약수에 대한 제 신념이 강하다”며 “제가 늘 조용하게 있는 것 같지만 강하게 할 때는 세계 지도자들에게도 상당히 강하게 맞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이날 자신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결단’을 내려 힘을 발휘하겠다는 뜻을 여러번 강조했다.
반 총장의 이날 간담회는 최근 타결된 유엔기후협약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번 기후변화협약 체결로 향후 20년간 유엔사무총장이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특히 “이번 협약은 196개 유엔 회원국중 한 나라만 반대를 해도 통과가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은연중에 자신의 리더십을 내세우기도 했다.
반 총장은 “대개 총장 임기 마지막해에는 ‘와인앤드 다인(wine& dine·근사한 저녁식사와 포도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는 뜻)’을 즐기지만 내년 임기 마지막까지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하면서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내년 1월 다보스 포럼과 3월에 핵안보정상회의, 4월에 파리정상회의 서명식 등 굵직굵직한 일정을 날짜별로 일일히 정리하면서 모두 직접 챙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는 4·13총선 이후인 내년 6월 한국 방문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유엔 비정부기구(NGO) 회의를 유엔의 수장으로서 직접 주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반 총장은 설명했다.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서도 충고를 던졌다. 반 총장은 6월 열리는 NGO 회의에 약 3000명의 각국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석할 것일며 “국회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와 협조가 안 되면 정책 추진이 어렵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시민사회가 반대하면 일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사민사회-기업 등 3자 협력 모델이 구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북한 방문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진전 사항이 없다.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공표한 것 이상의 내용을 덧붙이지 않았다.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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