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국민 볼모로 벼랑 끝 전술
누리과정 예산 편성 갈등
작년처럼 막판 타결 가능성
근본 해결책 없이 '땜질' 되풀이
[ 강경민 기자 ] 만 3~5세 유치원·어린이집 무상교육 정책인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중앙정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국민을 볼모로 ‘벼랑 끝 싸움’을 하고 있다. 벌써 4년째다. 양측이 “예산을 더 이상 부담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치킨게임 양상이다. 이런 배경엔 최근 몇 년간 되풀이된 무상복지 갈등의 극적인 해결에서 얻은 ‘학습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 모두 파국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부담과 파장이 너무 커서다. 결국 양측은 ‘파국은 없다’는 전제 아래 끝까지 버텨야 상대방에게 더 많은 지원을 받아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상복지를 둘러싼 갈등의 시작은 0~2세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는 무상보육이 도입된 2012년부터다. 무상보육은 2012년 4월과 12월로 예정돼 있었던 19대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여당인 새누리당이 결정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책이다.
당시 奐?17개 시·도지사 모임인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공식 성명을 내고 “정부가 무상보육 재원을 책임지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일부 기초자치단체는 무상보육 예산이 부족해지자 신용카드로 대금을 먼저 지급한 뒤 나중에 카드로 돌려막는 방법을 썼다. 당시 대선을 불과 석 달 앞둔 상황에서 무상보육 대란을 우려한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무상보육 예산 부족분 1조26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 대통령은 만 3~5세 누리과정 확대, 65세 이상 기초연금 지급 등의 무상복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무상복지는 이듬해 또다시 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을 불러왔다. 서울시가 총대를 멨다. 서울시는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무상복지는 정부가 책임지라”고 다른 지자체와 함께 정부를 압박했다.
정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2013년 6월 열린 국무회의에선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련 부처 장관들이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예산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정부는 서울시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독자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같은 해 9월 서울시는 무상보육 예산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지방채 2000억원을 발행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대신 국회는 무상보육 국비 지원율을 15%포인트 상향하고, 지방소비세율을 6%포인트 높여줬다.
지난해 말엔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에 가려져 있던 누리과정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개 시·도에서 13명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게 계기가 됐다. 지난해 10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란을 우려한 정부는 결국 같은 해 12월 5600억원을 목적예비비로 편성해 우회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부족분 1조2000억원은 각 시·도교육청이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는 지방채를 발행해 메꿨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우회 지원을 위해 목적예비비 3000억원을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어린이집 예산 1조8000억원이 부족하다. 예산 여력이 없어 이 돈을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청의 주장이다. 앞으로 한 달 내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년 1월부터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비 지원이 끊기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나 누리과정 대란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이 중단되는 사태를 정부와 여당이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도 교육청이 시종 강경하게 대응하는 이유다. 결국 지난해처럼 정부와 교육청이 각각 일정 금액을 분담하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많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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