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눈 먼 돈' 이유 있었네] 서류만 보고 2억, 추천만 믿고 5억…혈세 179억 날린 공무원들

입력 2015-12-25 19:02  

연 58조 보조금'부실 집행'…정부는 인력 부족 탓만

전문성 없어 유망벤처 선정도 민간 위탁…검증도 소홀
복지·창업 촉진 명목 돈 풀기 전 지급시스템 정비해야



[ 박상용 기자 ] 공무원의 허술한 관리로 정부 보조금이 많게는 건당 수억원씩 사기꾼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 7월 서울 북부지방검찰청에 신설된 재정조세범죄 중점수사팀(팀장 부장검사 손영배)이 5개월여 동안 적발한 정부 지원금 편취 사범은 75명이다. 이들은 힘들이지 않고 178억9000여만원을 빼돌렸다. 정부 보조금의 허술한 집행 체계를 악용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2011년 43조7000억원에서 올해 58조4000억원으로 4년 새 33% 불어난 정부 보조금의 부실한 집행 실태다. 그런데도 정부 관계자들은 “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가장 흔한 범죄는 만 65세 이상 노인을 돌보는 요양기관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급하는 장기요양급여 편취다. 일부 요양기관은 건강보험공단에서 일일이 간병 서비스 등의 이행 실태를 챙길 수 없다는 허점을 노려 허위로 보조금을 수령했다.

2011년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2억3000여만원을 가로챈 요양기관 운영자 송모씨(70)가 대표적이다. 송씨는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로 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실제로는 제공하지 않은 요양 서비스를 한 것처럼 입력했다. 이렇게 받은 돈의 일부를 서비스 대상인 노인들에게 줘 입막음을 했다. 건강보험공단은 송씨가 요양급여를 가로챈 4년여 동안 이 같은 사실을 파악조차 못한 셈이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전국 요양병원을 전수조사하기에는 공무원 인력이 부족하다”며 “최근 인력을 보강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2011년부터 전자태그(RFID)를 활용한 전자관리시스템을 도입해 요양기관의 서비스 제공 여부를 공단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송씨 사례처럼 요양기관과 노인들이 짜고 입을 맞추면 부당 수급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포상금을 내걸고 제보를 받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해당 보조금 지급 규모는 올해 5166억원에 달한다.

전문성이 부족해 보조금 집행을 위한 판단 자체를 민간기업에 맡겼다가 돈을 떼인 사례도 있다. 2013년부터 유망 벤처기업 27곳을 선정해 기술개발 지원금 45억원을 지급한 정보통신진흥원은 5억여원을 엉뚱한 곳에 집행했다. 정보통신진흥원이 제대로 된 검증장치 없이 창업기획사 4곳과 업무협약을 맺고 지원금 지급 대상을 추천받은 것이 문제였다.

창업기획사 대표 강모씨(35)는 지난해 모바일 보안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라며 벤처기업 한 곳을 정보통신진흥원에 추천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강씨 회사의 직원들이 차린 기업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인프라가 전혀 없었다. 개발한 신기술이라고 홍보한 것도 과거 강씨가 개발한 것과 동일했다. 검찰 관계자는 “강씨가 직원들을 시켜 법인을 설립하게 한 뒤 이를 유망 벤처기업으로 포장해 보조금을 빼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보통신진흥원은 강씨의 추천만 믿고 1년간 이 회사를 비롯한 3개 업체에 5억2000여만원을 지급했다.

정보통신진흥원 관계자는 “강씨가 자신이 과거에 개발한 기술을 정부 시스템에 등록하지 않아 담당 공무원이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보통신진흥원은 창업기획사가 단독으로 우수 벤처를 선정하지 않도록 하고 대학 교수 등을 통해 검증할 계획이다.

조달청의 허술한 납품 관리를 틈타 9억9000만원을 가로챈 업자도 있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생산업체 대표 이모씨(54)는 조달청에 우수 LED로 선정된 자사 제품을 납품하기로 한 뒤 실제로는 생산단가가 싼 하도급 업체 제품을 공급했다. 조달청이 중소기업청이 발급한 직접생산증명서만 믿고 해당 LED 업체에서 LED를 직접 생산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조달청은 뒤늦게 모든 계약 업체를 대상으로 생산 여부를 조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정부 보조금 개편 방안을 연구한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복지와 창업 촉진 등을 명목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풀고 있지만 일선에서는 이를 제대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보조금 지급 확대에 앞서 지급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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