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화 속 페미니즘

입력 2015-12-27 22:48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할리우드 영화들이 세계적인 인기다. 여성은 더 이상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어벤져스’의 블랙 위도우(스칼렛 조핸슨) 같은 감초 수준도 훌쩍 뛰어넘는다. 전사, 사령관, CEO, 심지어 구원자로까지 격상되고 있다.

과거 모든 흥행기록을 다 깼다는 ‘스타워스: 깨어난 포스’부터 그렇다. 여주인공 레이(제이미 리들리)는 시종일관 뛰고 맞서고 싸운다. 다음 속편에선 여성 제다이 기사가 등장할 판이다. 4편에서 연약하기만 했던 레이아 공주(캐리 피셔)도 저항군 사령관으로 되돌아왔다.

앞서 4주간 북미 박스오피스 1위였던 ‘헝거게임: 더 파이널’에서 최후의 1인은 여전사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맥스(톰 하디)보다 삭발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가 더 비중이 커 보인다. ‘미션임파서블: 로그네이션’에서도 강력한 미션걸 일사(레베카 퍼거슨)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턴’에서 직원 200명을 거느린 CEO는 30세 여성 줄스(앤 해서웨이)다. 반면 남성은 대개 찌질하거나 여자에게 꼬리친다. 70세 인턴 벤(로버트 드 니로)처럼 늙은 ‘객摸?아저씨’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란 뉘앙스다.

할리우드 영화에 새삼 페미니즘 바람이 거세다. 페미니즘은 성 차별과 남성중심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 해방의 이데올로기다. 여성에게 문제는 생물학적 성(sex)이 아닌 사회적 성(gender)이란 주장이다. 과거 ‘델마와 루이스’에서 남성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차를 달려 그랜드캐니언을 비행(동반 자살)하는 데 머물렀다. 반면 요즘 영화들에서 여성은 결코 무기력하지 않다. 특유의 공감과 배려 능력에다 힘과 근육까지 겸비한 것이다. 21세기 여성상의 변화다.

이런 현상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 민주당과 가까운 할리우드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장 가능성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정작 성 차별이 심한 곳이 바로 할리우드다. 소니 해킹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남성 조연이 여성 주연보다 출연료를 더 받는다.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작 57편 중 여성 주인공 작품은 12편인데, 할리우드 영화는 단 한 편이고 나머지는 외국영화, 애니메이션 등이었다. 할리우드의 페미니즘 열풍이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한국에선 거꾸로 남성 영화 일색이다. 올해 톱10 영화 중 여성 주역은 ‘암살’(전지현)뿐이었다. 멜로가 시들해지면서 페미니즘 대신 마초이즘이나 브로맨스가 대세다. 사회마다 영화 취향이 이렇게 대조적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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