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일 기자 ] 제주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시간 여행길이 뚫리고 있다. 이른바 ‘지질 트레일’이다. 지질 트레일은 세계지질공원을 바탕으로 각 지역 특유의 지질자원과 마을의 역사·문화·신화·생활 등을 접목해 조성한 도보여행길이다. 수월봉 지질 트레일을 비롯해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역의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 만장굴 지역의 ‘김녕·월정 지질 트레일’, 성산일출봉 지역의 ‘성산·오조 지질 트레일’이 올레꾼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
산방산·용머리해안 길은 ‘80만년 지구의 시간을 품은 길’로 불린다. 용머리해안은 대지 위로 솟은 용암이 물을 만나 격렬하게 반응하며 무수한 세월 속에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화산체다. 서귀포 남서쪽 해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방산은 대 嗤?뚫고 올라온 용암이 멀리 흐르지 못하고 쌓이면서 봉긋하게 솟은 용암돔이다. 이 둘은 80만년의 오랜 시간 동안 바다와 땅에서 사이좋게 자리를 잡았다. 이후 산방산은 제주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고, 바다의 시간이 허락해야만 한 바퀴를 돌아나올 수 있는 용머리해안은 삶의 터전이 됐다.
제주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이 지역에는 인간의 삶이 투영된 파도소리와 숨비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걷는 동안 ‘시간’이란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트레일이다.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은 세 개 코스로 조성돼 있다. A코스는 13.7㎞.
김녕·월정 지질 트레일
김녕(金寧)은 ‘넉넉하고 편안한 마을’, 월정(月汀)은 ‘아름다운 반달을 닮은 마을’이란 뜻을 담고 있다. 만장굴을 비롯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거문오름용암동굴계에 속하는 용암동굴 무리가 이 두 마을의 지하세계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화산 폭발로 인해 흘러내린 용암이 마을 전체를 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동굴 위에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이 드문드문 보이고, 동굴 주변에는 용천수가 넘쳐 흐른다. 그 옛날 이 지역은 빌레(너럭바위)가 많아 농사 지을 땅이 부족했지만 주민들은 마을을 버리지 않았다. 빌레를 깨고 밭을 일궈 오늘날까지 삶을 이어 왔다. 조각난 빌레와 밭에 널브러진 돌은 바람을 피하고, 경계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흑룡만리(黑龍萬里)’ 밭담길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마을은 지금 어장이 풍부해 반농반어(半農半漁)를 하고 멜(큰 멸치)이 많이 들어오는 조간대를 끼고 있어 땅의 힘을 돋우는 거름으로 ‘멜거름’을 쓰기도 한다.
땅과 바다를 개척해 산다는 것은 ‘억척’이 아니면 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이 마을에는 농사일과 바닷일, 가정의 안녕을 비는 민속신앙이 발달했다. 용암동굴 위로 뚫린 길 곳곳에는 옛 민속신앙과 독특한 농경방식, 어로문화가 지금껏 남아 있다. 김녕·월정 지질 트레일은 총 14.6㎞다.
성산·오조 지질 트레일
성산·오조 지질 트레일은 화산과 바다, 사람을 통해 해양문화를 품는 길이다. 성산일출봉을 끼고 있는 트레일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는 성산리와 성산마을보다 햇살이 먼저 닿는다는 오조리에 걸쳐 있다. 성산일출봉은 7000년 전 바닷속에서 화산이 터져 용암이 솟구쳐 오르며 조성된 화산재 언덕인 수성화산이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 고성리로 통하는 마을 입구가 열리고 닫히는 자연수문이 남아 있던 이 지역은 땅이 비좁고 척박하다.
예부터 손재주가 좋은 목수들이 많았던 까닭에 온갖 선박을 이곳에서 제작했고, 해녀들이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물질을 하는 ‘뱃물질’도 활발했던 곳이다.
오조리와 성산리 사이에는 커다란 호수가 된 내수면이 자리하고 있다. 내수면은 과거 바다였지만 터진목을 막고 갑문다리가 놓이면서 바다를 호수로 만든 것이다. 호수에는 해마다 철새들이 몰려들고 조개잡이 체험장과 빌레지대가 사방에 널려 있어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놀멍쉬멍’ 트레일을 한 바퀴 돌아도 성산일출봉은 タ【?떠나지 않는다. 걷는 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일출봉이 새롭다.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일출 풍광도 장관이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총 8.3㎞로 트레일코스 중 가장 짧다.
☞ 여행팁
지질 트레일을 걷는 동안 ‘지오’라는 브랜드의 다양한 지역상품을 접하는 것 또한 색다른 재미다. 게스트하우스와 펜션 등을 활용한 테마 숙소 ‘지오하우스’, 로컬푸드 ‘지오푸드’, 지질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지오팜’은 물론 자전거 지질 트레일, 수상 지질 트레일, 해녀물질 문화체험, 수중해저 지질 체험, 전통주 활용 체험 등 다양한 즐거움을 길에서 누릴 수 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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