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100만원짜리 폰 살 필요 없다. 비슷한 사양에 값은 절반이다.”
지난 9월 출시된 스마트폰 ‘루나’를 써본 소비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쏟아낸 후기다. 5.5인치 풀HD 디스플레이, 1300만화소 카메라 등을 달고도 출고가는 44만9900원으로 낮춘 루나는 연말까지 15만대 판매를 넘어설 전망이다.
“디자인은 에르메스인데 값은 유니클로다.” 유니클로가 에르메스 디자이너 출신 크리스토퍼 르메르와 만든 ‘유니클로&르메르 컬렉션’ 한정판은 발매 첫날인 10월2일 전국 매장에 1000여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유니클로는 올해 국내 패션업계 최초로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돌풍을 일으킨 히트상품의 면면을 보면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에 집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자신이 만족감을 느끼는 곳에만 지갑을 여는 ‘가치소비’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 루나폰·티볼리, 불필요한 성능 줄여 가격 낮춰
루나는 ‘뛰어난 사양에 낮은 가격’을 전면에 내세워 보급형 중저가폰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고모델인 걸그룹 멤버 이름을 따 일명 ‘설현폰’으로 불리는 이 제품은 SK텔레콤과 TG앤컴퍼니가 기획 단계부터 협업해 1년여의 연구 끝에 완성했다.
‘세계 최강’은 아니지만 일반 사용자들은 80만~100만원대 제품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준의 사양을 갖췄다. 제조원가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아이폰 협력업체인 대만 폭스콘에 생산을 맡겼다. 값은 아이폰6플러스(92만4000원·16GB 기준)의 절반도 안 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10~30대 젊은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루나는 가격은 저렴하지만 하드웨어 성능은 밀리지 않는다”며 “실속형 제품이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쌍용자동차가 지난 1월 새로 내놓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도 세련된 디자인에 1606만원에서 시작하는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누렸다. SUV는 통상 같은 급의 세단보다 비싸지만 티볼리는 비슷한 가격을 책정하고 ‘내 생애 첫 차’를 콘셉트로 잡아 젊은 층을 적극 공략했다. 티볼리는 올 11월까지 국내에서 3만9809대 팔렸다.
(2) '드럼+통돌이' '빅 요구르트' 숨어있는 수요 캐내
시장의 상식을 깨고 소비자의 새로운 수요를 발굴한 제품도 주목받았다. 편의점 CU의 ‘빅 요구르트’(사진)는 일반 요구르트(60mL) 4.5개 분량인 270mL 제품이다. 흔히 요구르트는 “많이 마시면 질린다”고 해서 소용량 제품 ?나왔다. CU는 과거 3년치 음료 매출을 분석한 결과 요구르트의 주 구매층이 어린이나 청소년이 아닌 20~30대 여성이고, 이들은 여러 개를 사 한꺼번에 마신다는 점을 찾아냈다. CU 측은 “빅 요구르트는 출시 한 달 만에 유제품 부문 1위에 올라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며 “우유보다 큰 요구르트에 대한 수요가 숨어있는 점을 발굴한 게 주효했다”고 전했다.
LG전자 세탁기 ‘트롬 트윈워시’는 속옷이나 아이옷, 운동화 등을 따로 빨기 원하는 주부들의 수요에 맞춰 개발됐다. 세계 최초로 드럼세탁기 밑에 통돌이 세탁기를 붙여 두 대 중 한 대만 쓰거나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주부들 사이에서 “뛰어난 아이디어 상품”이란 호평을 받으며 280만원의 고가에도 하루 최대 700대 판매 기록도 세웠다.
(3) 소비자는 '사치'보다 '가치'…SPA의류 질주
브랜드 ‘이름값’만으로 장사가 잘 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2005년 한국 진출 이후 10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 ‘유니클로’는 의류 소비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유니클로는 옷에 브랜드 로고를 찍어넣지 않는다. 대신 도레이 등 유명 섬유업체와 공동 개발한 고품질의 소재로 ‘오랫동안 편안하게 입는 옷’임을 강조한다. 그동안 가격을 틈틈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웬만한 셔츠나 바지는 2만~4만원대, 두툼한 겨울 외투조차 10만원 안팎에 팔고 있다.
반면 화려한 ‘로고 플레이’를 앞세운 명품 브랜드들은 매출 면에서 고전하고 있고, 디자인에서도 로고를 숨기는 쪽으로 바꾸는 추세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SPA의 성장은 패션시장 소비자들이 더 이상 과시용 소비에 집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며 “기본적인 의류는 저렴한 SPA를 활용하고, 고가 명품은 희소성 있는 브랜드로 몰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4) SNS 파워…시식 후기 덕 본 진짬뽕 '열풍'
올해 히트상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해지는 사용후기가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해 ‘허니버터칩’에 이어 올 라면업계의 히트상품인 농심 ‘짜왕’과 오뚜기 ‘진짬뽕’이 대표적 사례다. 짜왕은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뒤 SNS 상에서 ‘짜장면보다 맛있는 라면’으로 불리면서 월 매출 기준 신라면에 이어 라면시장 2위에 올랐다. 진짬뽕은 대형마트 시식행사 후기가 SNS를 통해 확산한 경우다. 강구만 오뚜기 홍보실장은 “마트 시식행사라는 전통적인 방식은 별 효과가 없었지만 이후 이슈가 재생산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두 달 만에 20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고 설명했다.
임현우/안정락/강현우/강영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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