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다. 밀린 숙제를 또 새해로 넘기고 있다. 올 연말에 이런저런 자리마다 내년은 정말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오죽하면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 새해 화두는 현상유지(status quo)라는 말까지 나오는 정도다.
물론 안팎에는 리스크 요인들이 즐비하다. 미국 경제만 회복이 뚜렷할 뿐 일본과 유럽은 간신히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날 것이라고 하고, 중국도 성장률이 6% 초반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다 기록적인 저유가로 중동 등 산유국과 자원부국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경고가 요란하다. 10년 주기의 글로벌 경제위기론을 다시 상기시킨다.
한국 내부적으로도 부정적인 요인만 두드러진다. 올해에 이어 내년 역시 3% 성장도 힘겹다고 한다. 수출조차 과연 회복될지 미지수고, 내수도 부동산시장이 식으면서 힘이 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저성장이 추세적이라며 고용절벽, 소비절벽, 인구절벽 등 온통 절벽론이다.
현상유지가 화두라는데…
그렇지만 새해는 항상 힘들게 다가왔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다. 낙관적인 때가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비관론이 무성하지만 긍정적인 요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소위 경제민주화 소동만 해도 불과 1~2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진정됐다. 물론 여전히 잔불이 살아있어 국회에선 틈만 나면 바보들의 지옥을 만들자는 각종 보호법과 해괴한 반(反)시장, 반기업 법안들이 툭툭 튀어나오지만 말이다. 특히 정부가 비록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경제를 살리겠다는 각오는 분명하니, 과거로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성장도 그렇게 비관 일변도로 볼 것 없다. 기획재정부가 추정하는 올 성장률은 2.7%에 불과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선방한 축에 든다는 게 해외 평가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우리가 적어도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위기가 닥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위기가 소리 없이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알려진 미지(known-unknowns)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unknown-unknowns)보다는 훨씬 덜 위험하다.
혁신 만드는 시스템 갖춰야
오히려 경계할 것은 의지의 부족이다. 현상유지만 돼도 다행이라는 말이 자칫 새해에 ‘올해만큼 못해도 그만’이라는 변명 찾기라면 안될 말이다. 한 단계 더 올라가겠다는 목표를 세워도 간신히 현상유지가 될지 모른다. 과연 혁신을 만드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낡은 시스템에 갇혀 추락하기만 하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는 문제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뛸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투자도 늘리고 일자리도 창출해 절벽을 넘어야 한다. 결국 기업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혁신은 계속 이뤄져왔고 히트상품이 안 나왔던 때도 없었다. 긍정의 힘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자주 놀랄 만한 기적을 낳는다. 하필 새해에 총선이 끼어 포퓰리즘 바람이 얼마나 불어댈지 걱정되지만, 국민의 불신이 깊은 그만큼은 정치도 좀 바뀌지 않을까 기대도 해본다. 문밖에 나서면 찬바람이 세차기만 하다. 그래도 이미 낮은 점점 길어지고 있는 중이다. 다들 건강부터 잘 챙기시길….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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