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속에 숨겨진 나치 잔혹상…의문의 살인사건과 연계 '흥미'

입력 2015-12-30 18:17   수정 2015-12-31 05:05

독일 소설가 얀 제거스 신작 '한여름 밤의 비밀' 출간


[ 박상익 기자 ]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선상 레스토랑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평화로웠던 식당은 다섯 명이 살해당한 사건 현장으로 바뀌었다. 로버트 마탈러 프랑크푸르트경찰청 강력팀장은 뚜렷한 증거도 없고 피해자 간 공통점도 없는 현장에서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그는 독일 인기 소설가 얀 제거스(사진)가 쓴 ‘마탈러 형사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최근 번역·출간된 소설 《한여름 밤의 비밀》(마시멜로)에서 다시 마탈러를 불러내 사건을 풀어나간다. 이야기는 파리에서 소규모 극장을 운영했던 70대 노인 호프만의 사연에서 시작한다. 그는 어느날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열두 살 때 부모가 나치 대원에 끌려가고 나는 프랑스로 도망쳤다”고 과거를 털어놓는다. 방송 직후 그에게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서류 봉투가 전달된다. 봉투 속에는 그의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세계적 작곡가의 미출간 친필 악보가 들어 있다.

호프만의 사연을 소개한 방송기자 발레리는 악보의 저작권 계약을 위해 호프만 대신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하지만 선상 레스토랑 살인사건 현恙【?납치돼 사라진다.

이 작품이 여느 스릴러와 다른 점은 ‘부끄러운 역사’를 다루는 데 있다. 소설이 역사를 차용하는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들의 윗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되새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성적으로는 잘못을 몇 번이고 인정해도 마음속엔 ‘얼마나 더 사과를 하란 말이냐’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마탈러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불편하고 끔찍하다는 생각 그 이상은 아니었다’는 그는 사건을 추적하다 아우슈비츠의 끔찍한 실상을 기록한 자료를 읽은 뒤 자신이 얼마나 막연하게 생각했는지 깨닫고 괴로워한다.

“마탈러는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라는 특수작업부대가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포로 수용자로 구성된 부대로, 나치수용소에서 살해된 10만여명의 시체를 나르는 일을 했다.(…)이 부대에 소속됐던 수용자 중에 가스실 문 앞에서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360쪽)

대중소설에서도 부끄러운 과거를 스스로 언급하는 독일의 ‘끝나지 않은 반성’이 이웃 나라 일본과 새삼 대비되는 대목이다. 마탈러 시리즈는 독일 ZDF 방송사 드라마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었다. 잔혹한 살인의 참상과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치밀한 구조 안에 담아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484쪽, 1만3800원.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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