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8100억원, 한진해운 6800억 자본 늘려야
영업익으로 이자갚기 급급…해운사 "증자 여력 없다"
정부 "배 건조는 국내에 맡겨 조선사도 살릴 수 있다"
[ 박동휘/김보라 기자 ]
정부가 위기에 처한 해운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조건부 방안을 내놨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이 글로벌 해운사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와 은행이 펀드를 조성해 초대형·고효율 선박을 건조한 뒤 이를 빌려주되 각 회사의 기존 부채 상환을 위한 자금 마련은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내용이다. ‘퍼주기식 지원은 안 된다’는 원칙은 지켰지만 영양실조로 입원한 환자에게 엉뚱하게 헬스클럽 회원권을 주겠다는 식의 발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 생색내지만 효과는 ‘글쎄’
금융위원회 주도로 지난 11월 출범한 정부 내 협의체가 산업별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면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업종이 해운이다. 국적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글로벌 해운업황이 장기 침체된 데다 고효율에코십 신규 투자가 중단되면서 원가경쟁력이 지속 하락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여기에다 두 회사 모두 빚더미에 짓눌려 있다. 자본잠식 상태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총차입금이 각각 5조9600억원(9월 말)과 4조5400억원(10월 말)에 달한다.
원칙대로라면 이들은 금융감독원이 30일 발표한 수시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워크아웃 대상) 또는 D등급(법정관리 대상)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채권은행은 자구계획안 이행을 조건으로 강제 구조조정을 내년 6~7월 정기 신용위험평가 이후로 미뤄줬다. 회사채 상환이 제때 안됐을 때 시장에 미칠 파장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채 잔액은 한진해운이 1조8500억원, 현대상선이 1조7300억원에 달한다.
정부 협의체에서 한때 두 회사 간 합병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한계기업끼리 합쳐봐야 재무구조 개선 등에 효과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해운사 “이자 내기도 버겁다”
정부가 이날 내놓은 해운업 지원대책은 고육책 성격이 짙을 뿐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강력한 자구안을 마련해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면 초대형 선박 확보를 지원해 원가경쟁력을 높여주겠다는 것이지만 해운사들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내기도 버거운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3분기 말 개별기준 부채비율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각각 786%, 747%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박펀드를 조성해도 실제 선박 건조까지는 2~3년이 걸린다”며 “그때까지 버틸 재간이 없다”고 했다.
금융당국이 유동성 직접 지원이라는 카드를 꺼내지 못한 데엔 2009년과 2013년의 쓰라린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채권은행을 동원해 선박매입펀드를 결성했다. 운항 중인 선박을 직접 매입해 해운사에 유동성을 공급하려는 취지였다. 2013년엔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통해 현대상선(1조432억원)과 한진해운(8387억원)이 갚아야 할 회사채를 대신 변제해줬다.
하지만 글로벌 불황 앞에 유동성 지원책은 무위로 돌아갔다. 세 번째인 이번에도 돈을 퍼주다간 세금만 축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캠코를 비롯해 채권은행이 선박펀드를 조성해 배를 건조하고 이를 해운사에 빌려주는 구조로 지원안을 짰다.
정부는 크게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선박 발주는 국내 대형 조선사에 할 계획”이라며 “위기에 빠진 조선과 해운사에 혜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 안정화가 두 번째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내년에 갚아야 할 회사채는 각각 6200억원과 8600억원 규모에 달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 지원만으로는 안되고 기업이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최대한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동휘/김보라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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