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00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경제학교수는 2013년에 출간한 대번영(Mass Flourishing)에서 역동적인 사회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혁신이 번영을 가져온다고 진단했다.
19세기 구미(歐美)의 잇단 신기술 발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관차를 발명한 조지 스티븐슨은 탄광 광부 출신이고 트랙터를 처음으로 제작한 존 디어는 일리노이주 대장장이 수리공이었다. 재봉틀을 발명해 특허를 낸 아이작 싱어는 12세에 집을 나와 기계공이 됐다.
축음기를 처음 만든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어떤가. 집안이 가난해 기차역에서 신문과 과자를 팔면서도 과학자의 열정을 이어갔다. 뤼미에르 형제는 프랑스 리옹에서 기술학교를 나온 뒤 아버지가 하던 사진회사에서 일하다 영사기(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했다. 그들이 제작한 무성영화 ‘기차의 도착’이 영화의 효시다.
혁신은 엘리트 전유물 아니다
혁신은 일부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역동성만 살아있다면 보통 사람들도 모험·창의·상상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꿀 새로운 뭔가를 내놓을 수 있다.
19세기 서구 문명은 오랜 문화적·사상적 조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 예술세계에서 개인주의를 꽃피운 르네상스(14~16세기)와 16세기부터 시작한 종교개혁과 무관치 않다. ‘직업 소명’을 중시한 칼뱅주의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 직업에서 성공하는 게 신의 영광이라고 주창했다. 이런 종교 사상적 조류가 미국 프로테스탄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과정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부모 세대들은 400~500년 잉태과정을 거쳐 꽃피운 19세기 서구 과학문명을 따라잡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는 비전(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시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했다.
기업은 허허벌판에 공장을 세우고 해외 선진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워 왔다. 부모 세대는 달러를 벌기 위해 독일 탄광, 중동 건설현장으로 달려갔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기적같이 경제 규모 세계 12위를 일궈냈다. ‘뭐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긍정적 사고가 ‘부의 원천’
하지만 어느새 국운(國運)이 기우는 듯한 불안감이 독버섯처럼 퍼져 가고 있다. 저성장과 청년실업난을 해결할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아서다. 빈부 갈등에 이어 세대 간 갈등까지 커지고 있다. 복합위기로 숨이 막힐 지경인데 정치권은 정쟁에 여념이 없다. 꿈이 스러진 자리에 ‘흙수저’ ‘헬조선’ 등 비관적인 단어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포기하면 기회조차 없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 현실이 암울하고 힘겨워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것에 집중해 성공 스토리를 차곡차곡 써가야 한다. 그래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한국경제신문이 새해 화두로 ‘다시 희망이다’를 제시한 것도 패배주의적 삶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취지다.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로 혁신을 촉발하고 부(富)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희망은 낙관주의자들이 부르는 합창이다. 실패해도 계속 시도해봐야 한다. 기적은 절로 오지 않는다.
이원익 부국장 겸 IT과학 / 디지털전략부장 i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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