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리포트] 닻 올린 아세안경제공동체…"2030년 경제규모 5조달러·세계 4위로"

입력 2016-01-03 20:00  

'동남아판 EU' AEC 출범

'인구 6억' 거대 경제블록
2018년까지 모든 관세 철폐…상품·서비스 등 자유롭게 이동

"15년후 세계 최대 소비시장"
평균연령 29세…중산층 확산…일본 "동남아가 최우선 투자처"

협의체 추진 인력·예산 부족
지재권 등 비관세 장벽 여전…나라마다 정치·경제 편차 커



[ 임근호 기자 ]
독일 물류회사인 DHL은 지난해 8월 중국 선전과 베트남 하노이, 태국 방콕, 말레이시아 페낭, 싱가포르 등 5개 도시를 트럭 운송으로 잇는 ‘DHL 아시아 커넥트’ 서비스를 선보였다. 선전에서 방콕까지 트럭으로 5일 걸린다. 13일 걸리는 바닷길 운송보다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지난달 31일 출범한 아세안경제공동체(AEC) 덕분에 가능해졌다. AEC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브루나이 캄보디아 필리핀 라오스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사이에 물류와 서비스, 숙련 노동자,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 6억명의 인구가 사는 아세안을 하나의 시장, 하나의 생산거점으로 묶겠다는 것이 AEC의 목표다.

인도차이나반도에는 그동?동서와 남북을 잇는 수천㎞의 고속도로도 들어섰다. AEC 출범으로 아세안 국가 간 무역에는 대부분 관세가 사라진다. 한결 편해진 교통과 간편해진 국경 간 거래로 인해 DHL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이 동남아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동남아판(版) 유럽연합(EU)을 꿈꾸는 아세안이 경제공동체로 변신하는 대담한 실험을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생산기지 목표

아세안 10개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2014년 기준 약 2조6000억달러로 세계 7위다. 인구는 약 6억2200만명으로 세계 3위다. 평균 연령은 29세로 젊고 중산층은 확대되고 있어 앞으로 성장 잠재력이 클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회계 및 전략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제이슨 헤이즈 파트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 세계 중산층 소비의 59%가 동남아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며 “자국에서 인구와 소비 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 기업의 76%가 동남아를 최우선 투자처로 삼는다는 설문 결과가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1967년 정치·안보적 요인에서 결성된 아세안은 냉전 해체 이후 경제 협력에 집중해왔다. 1992년 역내 자유무역협정(AFTA) 체결로 ‘경제 협력’을 추구했고, 지난해 말엔 AEC를 출범시키며 ‘경제 통합’의 길로 들어섰다. AEC의 4대 목표는 △단일 시장과 생산기지 건설 △경쟁력을 갖춘 경제 지역 △균등한 경제발전 △세계 경제로의 통합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상품, 서비스, 투자, 자본, 숙련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하는 ‘단일 시장과 단일 생산기지’ 건설이다.

관세는 이미 상당 부분 없어졌다. 아세안 선발 6개국인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의 평균 관세율은 2011년 말 이미 0.05%에 불과했고 교역 상품의 99%에 대해 관세를 철폐했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 후발 아세안 참여국들도 총 교역 상품의 98.6%에 대해 0~5%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은 2018년까지 역내 모든 관세를 철폐할 계획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AEC로 국가 간 장벽이 제거되면 아세안 역내 분업이 더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태국 국경과 가까운 캄보디아 코콩에 차량용 하네스 조립 공장을 세운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 야자키(矢崎)가 좋은 예다. 하네스는 차량 곳곳에 전력을 전달하고 각각의 센서를 연결하는 핵심 케이블로, 자동화가 어려워 사람이 직접 조립해야 한다. 태국에 원래 공장을 갖고 있던 야자키는 인건비가 싼 캄보디아로 재료를 보내, 거기서 조립된 하네스를 다시 태국 공장으로 가져와 공정을 마무리한다. 우에마쓰 겐지 야자키 태국법인 생산공정 담당 부장은 “태국 공장 하나만을 운영할 때보다 이득이 많다”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 여전…제재 방안도 없어

AEC는 2030년 GDP 5조달러로 세계 4위의 경제 규모를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거레스 리더 캐피털이코노믹스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AEC는 각 국가들이 합퓔?지키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을뿐더러 아세안 사무국도 이를 추진할 충분한 인력과 자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있는 아세안 사무국의 2014년 예산은 1700만달러(약 200억원)에 불과했다. 지역경제 통합 전문가인 자얀트 메논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당근만 있고 채찍은 없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또 아세안 국가 간에 관세 장벽은 사라졌지만 지식재산권, 토지사용권, 이민정책을 비롯해 각종 비관세 장벽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네덜란드 맥주업체 하이네켄은 인도네시아에 직접 공장을 세워 현지 맥주시장의 70%를 점유했지만 올 들어 인도네시아 정부가 모든 주류 판매를 금지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AEC는 숙련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만 해당되는 직업군은 의사 치과의사 엔지니어 건축가 토지측량사 회계사 관광업 8개로 아세안 전체 노동력의 1.5%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마저도 나라마다 다른 제도와 규제로 완벽히 자유로운 이동과는 거리가 멀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려면 다른 아세안 국가에서 자격을 취득했어도 태국에서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전했다.

경제와 정치의 편차가 나라마다 지나치게 큰 것도 통합의 걸림돌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5만5000달러에 달하지만 캄보디아는 1000달러를 갓 넘겼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정치가 여전히 불안정하고, 베트남은 공산당 독재 국가, 태국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나라다. 자동차가 달리는 방향도 5개국은 좌측, 나머지 5개국은 우측 통행으로 갈린다.

데이비드 필링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10개국이 AEC를 창설하고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며 “AEC가 내세운 청사진 가운데 상당 부분은 허구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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