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독고탁

입력 2016-01-04 17:36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외자 이름인 ‘탁’은 아마 탁구공 같이 생긴 얼굴 모양에서 딴 것이 아닐까 싶다. 외롭다는 뜻의 ‘독고(獨孤)’는 두 글자 성 가운데서도 희성이다. 까까머리에 얼굴이 동그란 ‘독고탁’은 1971년 ‘주근깨’란 만화에 처음 등장한 이후 1970~1980년대 전국 만화방을 석권한 주인공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외톨이 캐릭터로 그려진 독고탁은 평범한 외모에 작은 체구로 콤플렉스 덩어리다. 남에게 친절하지도,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지도 않다. 그러나 나름대로 밝고 낙천적이며 의지가 강하다. 사랑 앞에선 순정적이지만 떠날 줄도 아는 남자다. 스스로 자랑할 것이 많지 않던 시절, 남학생들은 자존심과 의리 그리고 승부욕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인 독고탁을 좋아했다.

이 독고탁을 창조한 만화가 이상무 씨가 엊그제 작고했다. 향년 70세이니 요즘으로 보면 참 아까운 나이다. 그의 부고가 전해지면서 많은 이가 독고탁을 떠올렸다. 같이 떠오르는 한 세트의 인물군이 있다. 독고탁보다 두 배나 되는 몸집에 항상 구박을 받으면서도 함께 다니던 덩치 조봉구, 독고탁이 짝사랑하던, 특히 허리를 단정히 동여맨 교복이 잘 어울렸던 숙이, 그리고 독고탁의 영원한 맞수 김준…. 독고탁은 야구나 축구 선수로 많이 나왔는데 ‘달려라 꼴찌’(1983)에서 투수로 선보인 ‘3종의 마구’는 지금도 그 가능성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을 정도다.

아이들 정서를 핑계로 만화에도 검열이 있던 시절, 만화가들은 주로 명랑만화를 그려야 했다. 주인공은 길창덕의 ‘꺼벙이’처럼 장난꾸러기로 그려지거나 그저 모범생처럼 나와야 했다. 그런데 이상무 씨는 고독의 아이콘이면서도 세상과 좌충우돌하는 독고탁으로 승부를 걸었다. 독고탁은 권선징악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기도 했고 체념이 짙게 깔린 어두운 구석이 있었다. 독고탁에 뒤이어 나타난 ‘오혜성’(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과 ‘이강토’(허영만의 ‘각시탈’)도 맥을 같이 하는 주인공이다.

이상무 씨의 데뷔작은 1965년 ‘여학생’이란 잡지에 연재하던 ‘노미호와 주리혜’다. 듣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제목이다. 독고탁 시리즈를 보면 그 유머에 더해,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도시화·산업화라는 시대적 변화와 연결한 만화가의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생전의 이상무 씨는 왜 독고탁을 계속 주인공으로 썼느냐는 질문에 “독고탁을 넣으면 더 많이 기억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캐릭터사업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브랜드 가치도 모르던, 참 만화 같은 시절 얘기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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