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정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경제성장, 금융위기 후 10년 됐지만 잠재성장률 밑돌아
만연한 저성장이 '뉴노멀'
금융시스템 회복 안도보다 기업 투자확대 유도 위한 재정정책·수요진작 시급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 미국 생산성 증가율 급감
'성장 둔화병'으로 고전
[ 샌프란시스코=이심기 기자 ] 미국경제학회(AEA)가 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힐튼호텔에서 개막한 연차총회의 기조연설자로 택한 사람은 얀 크레겔 바드칼리지 레비연구소 교수였다. 그는 수요를 중시하는 후기 케인스학파의 대표주자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 위주의 경기회복 노력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1930년대 뉴딜정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미국 정부가 대공황의 교훈을 완전히 잊고 있다”고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불과 2주 전 기준금리를 올리며 미국 경기가 견조한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선언했지만 그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여전하고, 실물경제의 회복은 미약하다”며 “정부와 정치인 모두 금융위기가 준 교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기가 터진 지 약 10년이 지났지만 경제성장률은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고, 실질 소득 증가가 없는 만연한 저성장이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됐다고 지적했다.
크레겔 교수는 “무엇보다 금융이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은 오산”이라며 방향 설정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은행의 지급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한 경제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회복이 뒤따를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대형 금융회사들이 수요를 진작해 경제를 회복시키기보다는 서로 주도권 싸움에 빠져 덩치만 키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예상치 못한 주택시장과 대박을 좇던 파생상품시장의 붕괴로 인해 시작됐으며, 이는 씨티와 AIG, 메릴린치 등 월가에서 군림해온 대형 금융회사의 실패가 원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크레겔 교수는 “지금은 금융시스템이 회복된 데 대해 안도하기보다는 기업들의 이익이 투자확대로 이어지고,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다른 세션에서도 미국 경제의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는 석학들의 우려가 잇따랐다.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유럽 경제가 최근 20년간 성장이 둔화되면서 고질적인 병이 됐듯이 미국도 똑같은 병에 걸려 고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캐나다의 중위 가구 소득이 미국보다 높고, 미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의료비를 부담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와 홍콩의 생활수준은 미국을 따라잡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이 1920년 이후 지난해까지 절반 수준으로, 1인당 생산은 약 3분의 1로 줄었다며 중위 소득자의 가처분소득 역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지속 가능한 성장추세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샌프란시스코=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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