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일본 이어 한국 타깃 가능성…"부패 관련 매뉴얼 강화해야"
[ 김병일 기자 ] 기업이 공무원에게 뇌물주는 것을 처벌하는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에 한국 기업이 걸려 들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 법은 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거나 미국에서 사업하는 한국 등 외국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데다 벌금이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해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로펌의 한 변호사는 5일 “해외부패방지법이 전문인 미국 로펌 변호사들이 최근 한국에 출장 와 다양하게 뒷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 법무부 수사에 일본과 중국 기업이 차례로 걸렸고 한국 기업만 빠졌는데 이번에 한국 기업을 타깃으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했다. 다른 로펌 변호사도 “수년 전에도 비슷한 소문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진짜인 것 같다”고 말했다.
FCPA는 미국 기업이 외국 관료에게 금품을 주고 계약을 따내는 부정행위를 방지하려고 만든 법이다.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 과정에서 미국 기업 400여개가 해외에서 3억달러 이상의 뇌물을 뿌렸다는 사실 등이 알려진 것이 법 제정의 발단이 됐다.
하지만 미국 이외 다른 나라 기업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거나 미국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의 불법행위 역시 미국의 국가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에서다. 심지어는 미국 증시 상장기업과 함께 컨소시엄을 형성한 외국 기업도 대상이라는 점에서 이 법의 포괄 범위가 방대하다.
일본의 대표적 전자제품회사 히타치가 남아프리카 정치인에게 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부당한 뇌물을 건넸다가 지난해 9월 벌금 1900만달러(약 225억원)를 냈으며,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2014년 3월 미국 영토인 코네티컷에서 인도네시아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것이 발각돼 미국 법무부에 벌금 8800만달러(약 1045억원)를 물어야 했다.
2011년 5월에는 중국 국영 항공사의 한국지사가 연루된 뇌물수수 사건이 발생했다. 벌금 액수로 최고 기록은 2008년 독일 지멘스가 세운 8억달러(약 9500억원)다.
현재까지 FCPA에 한국 기업이 연루됐다는 공식 기록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도 이미 FCPA 건으로 조사받았지만 조속히 해결됐을 것으로 관측한다. 다국적 로펌의 또 다른 변호사는 “미국 검찰과 한국 기업이 딜(거래)해서 합의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법무부가 기소하더라도 소송까지 가지 않고 벌금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개가 안 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사업하는 한국 기업은 FCPA에 걸려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최근 미국 로펌 변호사들의 한국 출장과 관련,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견해도 있다. FCPA에 정통한 미국 로펌의 한 변호사는 “미국 회사에서 경쟁 업체인 한국 기업을 손보기 위해 뒷조사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미국 정부도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한국 기업 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로펌 폴헤이스팅스의 김종한 한국 대표변호사는 “최근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경험했듯이 FCPA와 관련한 한국 기업의 리스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공무원과 만날 때의 매뉴얼 등 부패방지 관련 준법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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