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영 "운이 좋다고요?…간절함과 집중력이 '기적의 열쇠'죠"

입력 2016-01-06 18:12  

K골프스타 도전! 2016 (5) '역전의 여왕' 김세영

지난해엔 큰 일 앞두고 신기한 일 자주 일어나
새똥 맞고 역전 이글샷…비행기에 번개 맞기도

"액땜했으니 올해도 굿샷"

빨간바지 즐겨 입는 건 '긍정의 에너지' 주기 때문

샷이든 퍼팅이든 찬스땐 공 빼곤 아무것도 안 보여

메이저 포함 4승 목표…올림픽 금메달에 전력투구



[ 이관우 기자 ] “막 잠이 들었는데 ‘꽝’ 소리가 나는 거예요. 비행기에 번개가 떨어졌더라고요. 진~짜 무서웠어요!”

‘역전의 여왕’ 김세영(23·미래에셋)에겐 남들에게 없는 ‘뭔가’가 있는 듯했다. 입기만 하면 힘이 펄펄 솟는 ‘빨간바지의 마법’도 모자라 새똥 맞은 다음날 이글샷으로 역전 우승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번엔 마른하늘에 무시무시한 번개를 맞았다. 번개는 지난해 말 전지훈련 장소로 가던 비행기 날개에 떨어졌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전지훈련 중인 김세영은 지난 2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땐 정말 시집도 못 가보고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적을 몰고 다니는 골퍼?

그에겐 유독 ‘신기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데뷔 무대였던 코츠챔피언십에선 커트 탈락했다. 2라운드 동안 8오버파를 쳤다. 이어 열린 퓨어실크바하마클래식에선 연장 역전승을 거뒀다. ANA인스퍼레이션에서는 3타 차로 앞서다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며 첫 메이저 우승 기회를 날렸다. 그러고는 롯데챔피언십에서 기적적인 이글샷을 성공해 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를 침몰시켰다. 지난해 10월 블루베이챔피언십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던 칩샷을 홀에 집어넣는 기적을 연출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3승 모두 섬에서만 거둬 ‘섬녀’란 별명이 하나 더 붙었다. 그는 지난 시즌 LPGA 신인상을 받았다.

“신기해요. (박)인비 언니랑 연장 갔을 때 성공한 이글샷은 제가 봐도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그 전날 해변에서 이마에 새똥을 맞았는데 이번 번개도 좋은 징조겠죠? 하하.”

‘기적을 몰고 다닌다’는 말을 수없이 듣는 그다. 하지만 운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나 행운과 불행을 함께 겪는데 행운이 먼저 왔을 뿐이라는 얘기다. 빨간바지를 마지막날 즐겨 입는 것도 미신 때문이 아니라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나기 때문이란다. 생애 프로 통산 8승 중 7승이 역전승이란 건 뭘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간절함과 집중, 이런 게 먹힌다고 봅니다. 기회라고 느낄 때 저는 정말 완전 집중하거든요. 그럴 땐 샷이든 퍼팅이든 공밖에 안 보여서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도 잘 못 들어요.”

ANA인스퍼레이션에서 메이저 첫 우승을 어이없게 날린 것도 간暉蹈?긴장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자책했다. 3타 차로 앞서 있다 보니 만만하게 즐기려 했다가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멘붕’이 돼서 화조차 낼 수 없었다는 그는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경기할 때가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고 했다.

◆타고난 승부사 기질

김세영은 어렸을 때도 한 번 몰입하면 끝장을 봤다. 그는 “축구 태권도 딱지치기처럼 남자들이 좋아하는 운동은 다 좋아했고, 대부분 잘했다”고 말했다. 태권도장 관장인 아버지에게 배운 태권도가 공인 3단이다. 딱지치기는 동네 딱지를 다 끌어모을 정도로 잘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당구도 100을 놓는다.

“여자니까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를 하라는 말을 꽤 들었는데 미국에 가보니 충격이었습니다. 남자 여자 구분없이 오래전부터 모든 스포츠를 같이 즐기고 있더라고요.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도 생각해봤죠. 하하.”

태권도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다. ‘도(道)’의 의미가 맘에 꼭 들어서다. 그는 “어렸을 땐 리샤오룽(이소룡)과 청룽(성룡)도 무척 좋아했다”며 “요즘엔 훈련하느라 시간이 없어 틈나는 대로 태권도 퍼포먼스를 즐겨 본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태권도 퍼포먼스공연팀인 ‘K타이거스’의 동영상은 하루에 수십 번씩 돌려볼 정도다.

영어는 자신이 생각해도 제법 많이 늘었다고 했다. 한국말로 농담하길 즐기는 미국인 캐디보다 무작정 ‘하이~’ 하며 말을 걸어오는 동네 연습장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더 많이 배웠단다. “그냥 부닥쳐서 해결하다 보니 생존 영어가 많이 첸向楮? 친구들은 ‘된장 영어’라고 놀리지만요.”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그의 요즘 화두는 드라이버 정확도다. 시즌 3승, 상금 4위(182만달러), 장타 10위(263야드)로 지난해를 마무리했지만 드라이버 정확도가 105등(67.4%)으로 뚝 떨어진 건 문제라는 생각에서다.

올해 목표는 메이저 첫 승을 포함한 4승. 하지만 이보다 앞선 목표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 금메달이다. 하고 싶은 모든 일을 올림픽 출전 이후로 미룬 것도 그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습니다. 태권춤 안무가도 해보고 싶었고, 스티브 잡스 같은 발명가도 되고 싶었고요. 요즘엔 주식투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면서도 화끈하게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게 골프와 닮았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프로골퍼가 될 거냐고 물어봤다. ‘호기심 소녀’답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음,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 나올 만한 패션모델로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키 크고 날씬한 여자들의 삶이 어떤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하하.”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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