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주재원은 '임무'…한·일 정치적 반목으로 기업이 희생양돼선 안돼"

입력 2016-01-07 07:07   수정 2016-01-07 11:40

'미래 동반자' 한·일 기업

인터뷰 / 양인집 주일한국기업연합회 회장

한·일 관계 악화될때마다 기업 휘청
진로 막걸리 매출 3년새 5분의 1토막…백화점 진열대선 소주 사라지기도

화해 출발점은 서로 인정·존중
한국, 경제 발전에 일본의 기여 인정하고 일본은 선진국 문턱 온 한국 재평가해야

혐한·반일 고리 끊자
한일 청소년 교류사업 예산 늘리고 한·중·일 3국 공통교과서 서둘러야

기업도 미래 향해 발 맞춰야
수평분업 늘려 중복투자 막고 아프리카 등 제3국 진출 협력해야



[ 서정환 기자 ]
“반일(反日)은 혐한(嫌韓)을 부릅니다.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수십만 한국인에게 지난 몇 년은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한·일 위안부 협상이 전격 타결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양인집 주일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 회장의 목소리엔 환영과 기대가 여전히 묻어났다. 하이트진로 해외사업총괄 사장으로 일본에서 진로(옛 진로재팬)를 이끌고 있는 양 회장은 지난 4일 도쿄 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외교도 비즈니스처럼 기본은 타협”이라며 “어느 한쪽이 100%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올해로 일본 진출 28년째를 맞는 진로 역시 최근 3년여간 한·일 관계 악화로 직격탄을 맞았다. 진로의 막걸리 매출은 한류 붐이 한창이던 2011년 357만케이스(10.8L 환산 기준)에서 지난해 70만케이스로, 5분의 1 토막 났다. 수익성 높은 막걸리 주문이 뚝 끊어지면서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줄었다. 양 회장은 “2012년 말 우리 회사 일본인 직원은 영업차 들른 아오모리현 주점에서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한국 회사에서 월급받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느냐’는 얘기까지 들었다”며 “니혼바시의 미쓰코시백화점 본점 주류매장 진열대에 ‘진로 乙’(소주명)이 사라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과 요구 발언이 나온 이후였다. 그는 “천황 관련 발언은 일본인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 대통령은 일본에서 한국을 부러워할 정도로 이미지가 좋은 분이어서 실망감이 더 컸다”고 기억했다.

자신의 집안 얘기도 꺼냈다. 양 회장은 “우리 집안에 할아버지를 포함해 친인척 여섯분이 독립유공자”라며 “그런 나부터 과거사를 극복하고 양국 간 화해를 위해 솔선수범하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협상 결과를 놓고 한국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선 “국가 간 이슈인데 개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협상 결과가 나오긴 힘들었을 것”이라?“이제 과거를 훌훌 털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는 “마음으로 상호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경제대국으로 발전했고 한국 경제에 기여한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6·25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재도약할 수 있었고, 이젠 민주화와 산업화를 통해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에 있다는 점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 회장은 “한국과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이미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상호의존 관계”라며 “정치적 측면에서도 동북아의 안정과 공동 번영을 위해 협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 기업 간 관계가 수평적 관계로 바뀐 만큼 수평분업 확대를 통해 중복 투자와 과당 경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자원개발 등에 양국이 공동 진출한 것처럼 제3국의 대형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등에 컨소시엄 형태로 함께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양 사장은 올해 진로의 사업계획 중 하나로 ‘사케 수출’ 확대를 꼽았다. 그는 “일본 지방 중소형 양조장은 자체적으로 사케를 수출할 역량이 부족하다”며 “진로를 통해 42개국에 180여개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데, 이를 더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 정부 외교당국자에겐 “한·일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을 국가 예산으로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며 “양국 젊은이들이 이웃나라와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공존공영할 지혜를 스볜?터득하게 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한·중·일 3국 공동 교과서 제작에도 속도를 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양 사장은 “요즘 한국 주재원 사회에서 ‘일본은 임무(임원의 무덤)’라는 말이 유행한다는데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일본 사업이 워낙 어려워 연말이면 옷 벗고 나가는 법인장들이 많다 보니 나온 얘기”라며 “더 이상 한국 기업들이 정치적 반목의 대가를 치러선 안 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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