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정형모 지음 / 아르떼 / 400쪽 / 1만9000원
[ 고재연 기자 ]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서재에는 ‘고양이’ 일곱 마리가 있다. 가로 3m가 넘는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 7대를 그는 ‘캣(CAT·computer aided thinking)’이라고 부른다. 사고의 주체는 인간이고 어디까지나 컴퓨터는 그걸 도와줄 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언어의 마술사’다운 조어다.
2006년 디지털의 약점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보완하는 ‘디지로그(digilog)’ 시대를 선언한 이 교수는 신간 《이어령의 지(知)의 최전선》에서 치열한 지식 정보 세계의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분석한다.
저자는 먼저 3D(3차원)프린터에 대해 얘기한다. 2014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있는 한 설계회사는 대형 3D 프린터에서 뽑아낸 구조물을 조립해 하루에 집 10채를 지었다. 미국은 오하이오주에 3D프린터 연구센터를 조성하는 등 기술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3D프린터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데서 한발 더 나 튼4? 2014년 10월 미국 오토데스크는 ‘엔지니어가 3D프린터로 바이러스를 제작해 곧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말한다. “3D프린터로 바이러스를 찍어내고 있는 거야. 제약회사가 아닌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말이지.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바이러스 하나를 만드는 데 지금은 1000달러 정도지만, 3D프린터로 바이러스를 만들면 1달러 수준으로 떨어지게 돼. 생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엔지니어가 바이러스를 찍어내는 세상이야.”
그는 “디지로그의 시대는 문명의 축을 서양에서 정보기술(IT) 강국이 몰려 있는 아시아로 옮겨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국이 갈 길은 멀다. 이 교수는 “지식의 최전선에서 디지로그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한국은 정쟁에만 몰두한다”고 지적했다. 지의 최전선이 아니라 후방에서 싸우며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전 세계가 급속도로 디지털화되면서 ‘아날로그 결핍증’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을 찌르고서도 그가 아파할 것을 느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부위별로 잘려 비닐 포장 속에 갇힌 고기가 유통되며 다리가 네 개 달린 닭을 그리는 아이도 많아졌다. 생명과 육체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지식의 최전선’에 서 있기 위해 ‘와이어드’의 전자판 사이트 ‘www.wired.com’을 늘 탐독한다고 했다. 논문이나 책이 되기 이전에 지식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취재한 기사가 올라오는 곳이다. “책으로는 아직 안 나온 것들이야. 살아 獵?정보들이지. 책이나 도서관에 있는 것은 이미 누군가 생각한 것들, 즉 ‘소트(thought)’야. 과거분사지. 하지만 나는 지금 검색을 통해 ‘싱킹(thinking)’하고 있어. 싱킹은 현재분사야. 국경 없이 창궐하는 에볼라와 싸우는 것은 ‘국경 없는 의사회’만이 아니야. ‘국경 없는 지식인단’도 필요한 때가 온 거야. 소트가 아니라 싱킹하는 ‘국경 없는 지식인단’. 그게 인문학자들이 해야 할 면역체라고.”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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