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아이작슨 지음 / 정영목·신지영 옮김
오픈하우스 / 748쪽 / 2만5000원
[ 송태형 기자 ]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1788 ~1824)의 외동딸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수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찰스 배비지가 설계한 ‘해석 기관(analytic engine)’을 자세히 해설한 《주석》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계산하는 장치가 언젠가는 범용 컴퓨터가 될 것이다. 수를 조작할 뿐 아니라 음악을 만들고 말을 처리하고 한정 없이 다양한 방식과 한정 없는 범위로 연속해서 일반적 기호를 결합하는 아름다운 기계가 될 것이다.” 아버지 바이런은 방직기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지지했지만, 딸 러브레이스는 방직기가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를 짜듯이 기계가 인간의 상상력을 실현하고 확장시키는 미래를 꿈꿨다.
러브레이스가 예언한 기계는 미국에서 1950년대 등장했다. 그 후 30년 동안 인간의 생활방식에 혁명을 가져온 두 가지 역사적 혁신이 이뤄졌다. 마이크로칩 덕분에 컴퓨터는 개인용 기기가 될 만큼 작아졌고, 패킷 교환 네트워크 덕분에 컴퓨터는 웹으로 서로 연결됐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융합하자 디지털 창조성과 콘텐츠 공유, 공동체 형성, 소셜 네트워킹이 대규모로 꽃을 피웠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편집장을 지내고, 국내에서만 70만부가 넘게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 《스티브 잡스》를 쓴 월터 아이작슨은 “디지털 혁명으로 러브레이스가 ‘시적 과학’이라고 부른 것이 가능해졌으며, 마치 자카르 방직기가 태피스트리를 짜듯이 창조성과 테크놀로지가 씨줄과 날줄이 돼 서로 엮었다”고 표현했다.
아이작슨은 신간 《이노베이터》에서 1840년대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를 개척한 디지털 선지자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이야기로 시작해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혁명이 실제로 어떻게 이뤄졌는지 탐구한다. 그는 배비지와 러브레이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 마이크로칩 시대를 연 인텔의 로버트 노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 구글의 래리 페이지 등 디지털 시대의 한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60여명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벨연구소 제록스PARC 등 대기업 연구센터와 정부기관, 대학연구소 등도 다룬다. 저자는 뛰어난 전기 작가답게 디지털 혁명 주역들의 성격과 일화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트랜지스터, 마이크로칩, 비디오게임, 인터넷,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온라인, 웹 등으로 주제를 구분해 무엇이 그들을 각 분야에서 창조적인 인재로 이끌었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발생한 위대한 혁신은 천재성을 갖춘 개인과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기술자, 이를 시장에서 유통시키는 수완 있는 사업가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존 모클리, 윌리엄 쇼클리, 잡스 등 창의적인 천재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면, 프레스퍼 에커트, 월터 브래튼, 워즈니악 등 유능한 응용 엔지니어들이 개념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기술자들과 기업가로 이뤄진 협업 팀이 이런 발명품을 실용적인 제품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인정받는 에니악(모클리-에커트), 트랜지스터(쇼클리-브래튼), 매킨토시(잡스-워즈니악)다.
협업은 동시대인뿐만 아니라 세대 간에도 이뤄졌다. 최고의 혁신가들은 기술 변화의 경로를 이해하고 앞선 혁신가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다.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의 선구자인 앨런 케이, 케이는 마우스를 발명한 더글러스 엥겔바트, 엥겔바트는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J C R 리클라이더와 자동 다이얼식 전화를 발명한 배니버 부시의 작업을 기초로 삼았다. 저자는 “발명품, 특히 컴퓨터처럼 복잡한 발명품은 대개 개인의 영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협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성에서 나온다”며 “우리에게 친숙한 트위터나 구글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아이작슨은 마지막에 러브레이스의 ‘시적 과학’으로 돌아간다. 그는 컴퓨터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진정으로 생각하는 기계가 될 수 없다는 러브레이스의 주장을 지지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성은 기계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잡스는 “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한 테크놀로지”라고 말했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과학 지식이 없는 인문학은 반쪽 혁신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인문학자도 수학과 물리학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디지털 시대 창조성이 생겨나는 곳의 통제권을 엔지니어에게 넘겨주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디지털 혁명의 다음 단계에는 테크놀로지와 패션 음악 미술 문학 같은 창조적 산업이 결합하는 훨씬 더 새로운 방식이 나올 것”이라며 “이런 혁신의 주역은 아름다움과 공학, 인문학과 테크놀로지, 시와 프로세서를 연결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